연애와 결혼

가톨릭부산 2023.08.30 11:18 조회 수 : 15

호수 2773호 2023. 9. 3 
글쓴이 김성숙 아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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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결혼

 

 
김성숙 아멜리아
대연성당

 
   저는 비혼주의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자주 다투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태풍 속에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흔들리는 유리창을 보는 것처럼 제 마음은 늘 위태롭고 불안했었습니다. 부모님의 혼인 생활은 행복하기보다는 우울하고 답답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이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 속에서만 행복한 것이고 실상은 전쟁터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친구로 알게 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입은 그에게는 비누 냄새가 은은하게 났습니다. 아직 앳된 소년 모습에 장난기가 많은 그 친구는 제가 여자이니까 이래야 한다거나 본인이 남자니까 저래야 한다는 편견 없이 저를 아주 편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를 통해 따뜻한 봄날에 얼음이 녹듯이 마음이 편안해져 몰랐던 진정한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립심이 강해 어디를 가더라도 혼자인 것이 익숙했던 저는 이제는 다정하게 에스코트해 주는 그가 없는 자리는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와 연락이 안 될 때는 일하러 나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처럼 처량하고 외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그와 함께하다 헤어질 때는 코트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가고 싶을 만큼 늘 아쉬웠고, 집으로 들어가면 벌써 그가 그리워졌습니다. 그와 함께 늦은 오후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미래를 꿈꾸면서 그와 결혼을 결심하였습니다.
 
   결혼 후 초라하지만 우리 둘만의 공간에 함께 하였을 때는 알콩달콩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또 결혼 전 신자가 아니었던 그는 성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제 의견에 바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더욱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늘 저를 지지해 주고 아껴주는 그를 믿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를 배려하고 모든 일을 함께 하던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항상 1순위였던 저의 자리는 어느새 시댁과 직장, 친구들에게 밀려나 제일 마지막에 던져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저의 모습은 마치 유행이 지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장롱 안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낡은 옷처럼 처량하고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변해버린 그를 보면서 맛있는 사과인 줄 알고 골랐는데 썩어있는 모습을 발견해 환불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처럼 당황스럽기도 하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처럼 어리석은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서로에 대한 원망과 다툼으로 긴 장마철 우산 없이 세찬 빗줄기를 맞고 서 있는 것처럼 우리 부부는 위태로운 혼인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본당에서 실시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ME주말을 수강한 후 먹구름 가득했던 우리 부부의 관계는 맑은 하늘처럼 변해갔습니다. 저에게도 1순위가 되고 싶었던 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남편 하상 바오로에게 맡겨 놓은 것도 없으면서 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저의 부족함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하시며 저를 돌아보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결혼은 한자의 사람 인 ‘人’처럼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고 둘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완성되어 시너지효과를 주는 훌륭한 성소입니다. 혼자였더라면 반쪽만 채웠을, 어쩌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큰 캔버스를 같이 채울 수 있는 배우자가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늘 맑은 하늘만 있다면 가을에 수확한 벼는 쭉정이만 있겠지요. 부부로서 함께 한여름의 무더위와 싸우고 비바람 속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음에 든든하고 힘이 됩니다. 젊은이 여러분,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혼인 성소를 통해 주님의 평화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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