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구요?

가톨릭부산 2023.08.02 09:59 조회 수 : 12

호수 2769호 2023. 8. 6 
글쓴이 정재분 아가다 
시간이 없다구요?
 


 
정재분 아가다
남산성당·동시인
mmaaa1@hanmail.net

 
   “빵빵!”
 
   갈림길에서 5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경적이 울린다. 내비게이션을 보고 있어도 초행길에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당황스럽다. 
 
   나의 운전 습관은 골목길에서 자동차만 보이면 미리 서 있어 주는 편이다. 빨리 소통되게 하려고 먼저 후진을 해 주고, 앞차가 조금 오래 정차해도 말없이 기다린다. 옆에서는 왜 가지 않느냐고 성화이지만 몇 분 차이 나지도 않는데 조금 기다린들 어떠랴 … 마치 큰 손해라도 보는 듯 상대에게 욕을 해 대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루는 24시간 그대로인데 요즘은 모두 시간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걸어서 이동할 때 하루 종일 걸렸던 시간이 몇 시간으로 단축되고 밥을 하거나 빨래할 때 한나절씩 걸리던 시간도 모두 줄었다. 스위치 하나면 자동으로 알아서 척척 해 주는 세상이라 예전에 비해 시간이 펑펑 남을 텐데 참 이상한 일이다.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문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느새 시간의 노예가 되어간다. 옛날보다 시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 ‘넉 점 반’이 생각난다. 엄마가 아이에게 할아버지 가게에 가서 시방 몇 시나 되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는데 할아버지는 ‘넉 점 반’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입속으로 ‘넉 점 반’을 중얼거리며 오다가 물 먹는 닭 구경 한참, 개미 거둥 구경 한참,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서야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실컷 놀다 해가 져서야 돌아와서 ‘시방 넉 점 반’이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이 평화롭다. 
 
   어른의 삶이 고되고 힘들 때 순수한 동심을 떠올려 따뜻해지듯이 자연과 동물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처럼 되고 싶다. 아무리 세상이 편리하고 풍요로워져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면 삭막해진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자동으로 닫히는 그 짧은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고 어느새 닫힘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반성해 본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호수 제목 글쓴이
2875호 2025. 6. 22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2874호 2025. 6. 15  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2873호 2025. 6. 8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2872호 2025. 6. 1.  P하지 말고, 죄다 R리자 원성현 스테파노 
2871호 2025. 5. 25.  함께하는 기쁨 이원용 신부 
2870호 2025. 5. 18.  사람이 왔다. 김도아 프란치스카 
2869호 2025. 5. 11.  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2868호 2025. 5. 4.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김지혜 빈첸시아 
2865호 2025. 4. 13.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안덕자 베네딕다 
2864호 2025. 4. 6.  최고의 유산 양소영 마리아 
2863호 2025. 3. 30.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박시현 가브리엘라 
2862호 2025. 3. 23.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61호 2025. 3. 16.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60호 2025. 3.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2859호 2025. 3. 2  ‘나’ & ‘우리 함께 together’ 김민순 마리안나 
2858호 2025. 2. 23.  예수님 깨우기 탁은수 베드로 
2857호 2025. 2. 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최경련 소화데레사 
2856호 2025. 2. 9.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2855호 2025. 2. 2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2854호 2025. 1. 29  이 겨울의 시간 윤미순 데레사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