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분 아가다
남산성당·동시인
mmaaa1@hanmail.net
“빵빵!”
갈림길에서 5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경적이 울린다. 내비게이션을 보고 있어도 초행길에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당황스럽다.
나의 운전 습관은 골목길에서 자동차만 보이면 미리 서 있어 주는 편이다. 빨리 소통되게 하려고 먼저 후진을 해 주고, 앞차가 조금 오래 정차해도 말없이 기다린다. 옆에서는 왜 가지 않느냐고 성화이지만 몇 분 차이 나지도 않는데 조금 기다린들 어떠랴 … 마치 큰 손해라도 보는 듯 상대에게 욕을 해 대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루는 24시간 그대로인데 요즘은 모두 시간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걸어서 이동할 때 하루 종일 걸렸던 시간이 몇 시간으로 단축되고 밥을 하거나 빨래할 때 한나절씩 걸리던 시간도 모두 줄었다. 스위치 하나면 자동으로 알아서 척척 해 주는 세상이라 예전에 비해 시간이 펑펑 남을 텐데 참 이상한 일이다.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문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느새 시간의 노예가 되어간다. 옛날보다 시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 ‘넉 점 반’이 생각난다. 엄마가 아이에게 할아버지 가게에 가서 시방 몇 시나 되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는데 할아버지는 ‘넉 점 반’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입속으로 ‘넉 점 반’을 중얼거리며 오다가 물 먹는 닭 구경 한참, 개미 거둥 구경 한참,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서야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실컷 놀다 해가 져서야 돌아와서 ‘시방 넉 점 반’이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이 평화롭다.
어른의 삶이 고되고 힘들 때 순수한 동심을 떠올려 따뜻해지듯이 자연과 동물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처럼 되고 싶다. 아무리 세상이 편리하고 풍요로워져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면 삭막해진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자동으로 닫히는 그 짧은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고 어느새 닫힘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반성해 본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