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25호 2017.03.12 
글쓴이 홍성민 신부 

요즘 제 모습이 못난이 같아 속상합니다. 일도 마음대로 안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꾸 못난 모습이 드러나 우울합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기도도 하지만,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홍성민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parvus@hanmail.net

 

  우리의 기도는 많은 경우 나의 나약함이 사라지기를, 내 삶의 부족함이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완벽한 모습과 완벽한 삶을 원하고, 하느님께 내가 바라는 완전함을 청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기가 완벽하게 느껴질 때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같이‘못난이’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나 자신이 완벽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삶은 부족해집니다. 내가 다 알고 있고 내가 다 할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아가 겸손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루카 10, 21)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신앙인은 하느님 앞에서 완벽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만나고 체험하게 됩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못난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기도도 더 할 수 있게 된 것이고, 하느님의 위로와 힘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며 위로로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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