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765호 2023. 7. 9 
글쓴이 최순덕 세실리아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최순덕 세실리아
안락성당·수필가
redrose1956@hanmail.net


 
   우리의 옛말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며 잘 키워 놓은 잘난 자식들은 멀리 떠나가서 어버이날은 물론, 명절이 되어도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남처럼 살아가는 반면, 공부도 제대로 못 시키고 천덕꾸러기처럼 키운 모자란 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부족하나마 늘 감사하며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감동하며 이 속담을 떠올린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를 묵상하면서 이 속담을 생각한다. 세상의 지혜와 슬기를 지닌 자들은 잘난 자식으로, 철부지들은 못난 자식으로 줄긋기를 해본다. 세상의 지혜와 슬기로는 알 수 없도록 감추신 것을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신 ‘이것’이 무엇일까. 멀리 떨어져 남보다 못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자식이 과연 잘난 자식이었겠는가. 
 
   어려운 시절을 힘겹게 살아오신 우리의 부모님이시다. 오로지 자식 잘되기만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모진 세월 인내하며 살아오신 내 아버지요 어머니시다. 남의 눈을 의식하거나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린 적이 있는가? 절실한 마음으로 주님과 성모님께 도움 청하며 부모님의 손을 잡아주고 위로해 드린 적이 있는가? 부질없는 세상의 지혜 속에서 하느님도 부모님도 언제나 내 삶의 앞이 아니라 뒷전에 두고 살아가는, 그야말로 혼자 잘난 자식이었음을 고백한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자신을 ‘바보’라고 하셨다. 자신을 스스로 바보라고 낮추신 추기경님의 겸손한 삶의 태도에서 철부지들에게만 드러내 보이시는 ‘이것’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지지 않고 이기기만 하려고 아등바등 살아온 내 삶을 되돌아본다. 결코 이기지도 앞서지도 못하고 엎어지고 절망하며 세상의 지혜와 슬기가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 것인지 비로소 알아간다. 세상의 지혜가 넘쳐날수록 더욱 각박해지고 사랑이 메말라 가는 현실에서 어찌하면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진정한 철부지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세상의 돌부리에 넘어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사랑을 이미 무수히 받아오지 않았는가.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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