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5. 주님 공현 후 화요일(대리구미사)
① 1요한 4,7-10 ㉥ 마르 6,34-44.
하느님 사랑의 특징
오늘 요한1서 4장은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장엄한 말씀입니다. 수천년동안 구원의 역사를 통해 계시된 하느님에 대한 진리, 즉 하느님은 누구이신가를 오늘 요한1서4장이 완전히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1서 4장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합니다. 그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하여,, 특히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완전히 나타났다고 설명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한1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속죄제물이라고 합니다. 속죄제물(Victima)은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바치는 동물을 가리킵니다. 이 동물은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죄인을 대신해서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이 속죄제물의 본질은 자기를 죽임으로써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생명을 바쳐 남을 살리는 이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세상에 없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쬐끔 비슷한 점이 있긴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고통과 희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사랑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사랑은 자기 자녀에게만 희생적일 뿐 아니라,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에게까지도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무한한 사랑이며, 온 인류를 구원하는 거대한 사랑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속죄제물이 되신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사랑의 특징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하느님의 사랑은 자비롭고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출애34장을 보면 시나이산에서 하느님 자신이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는 장엄한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34,6~7)
이 자비로운 사랑이 바로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루고 완성되었습니다. 주님은 배반자 베드로를 교회의 으뜸으로 세우셨습니다. 또한 교회를 말살하려고 한, 교회의 박해자 바오로를 이방민족을 위한 위대한 사도로 삼았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죽게 되었을 때, 도망간 사도들을 한번도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활후 먼저 찾아가 ‘평화가 그대들에게!’라고 인사하시고, 그들을 온세상에 파견하시면서, 교회의 목자요 기둥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 십자가 밑에서 모욕하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성부께 청하셨으며, 죽은 순간 오른쪽 강도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하느님 자비의 화신이었습니다.
바로 이 자비로운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4,17이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참으로 자비롭고 구원적인 사랑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믿음의 핵심이고 우리는 이 진리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고 보편적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든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조건없이.. 한없이 사랑하십니다. 이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주님께서는 아름답게 설명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우리는 이 진리를 믿습니다. 우리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믿음이 있든, 믿음이 없든,, 부자든, 가난하든,, 하느님 편에서는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무한히 사랑을 쏟아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을 믿고 이 사랑에 답하고자 합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하느님 사랑 앞에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총과 축복을 내려주시길 빕니다.
셋째, 하느님의 사랑은 공짜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때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짜로 사랑해 줍니다. 이 점에서 부모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부모는 자기 자녀에게만 공짜로 사랑을 주며, 그 사랑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만인에게 공짜로 하해와 같은 사랑을 쏟아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부모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믿음을 주셨고, 마지막에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까지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당신을 성체로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공짜입니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답할 때, 주님과 우리 사이에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바로 이 일치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으로 답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참된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태 9,13)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그 자비로운 사랑으로 형제를 자비롭게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답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은 압바(Abba)이십니다.
이것은 하느님사랑의 특징을 모두 요약하는 것입니다. 신구약전체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하느님을 압바라고 불렀고, 또 그렇게 부르도록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특히 십자가 죽음직전, 겟세마니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주님은 하느님을 압바라고 부르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압바는 우리나라말로, 아빠와 비슷합니다. 어린애가 자기 아버지의 목을 껴안고 부르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압바라는 진리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가 얼마나 친밀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매일 하느님을 “압바”라고 조용히 부르도록 합시다. 더욱이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죄의식을 느낄 때,, 하느님을 압바라고 불러보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께 우리의 모든 근심걱정을 내어 맡기도록 합시다. 하느님은 한없이 자비로운 압바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기 힘든 형제들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압바도 하느님이시고 그 사람을 압바가 축복하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특히.. 우리 삶속에서.. 크고 작은 고통이 닥칠 때, 겟세마니동산에서 압바라고 부르며 기도하신 주님처럼, 주님과 함께,, 주님의 손을 잡고,,, 압바를 부르며, 그 고통 뒤에 그분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길 청합시다. 그리하여 그 뜻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믿고 압바께 의탁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묵상으로써 오늘 요한1서 4장의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이 우리 삶의 理想이 되고, 진리가 되고, 은총이 되길 빕니다.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축복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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