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 강론 – 다름과 틀림
주임신부 2023. 6. 25, 범일성당
오늘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다르다.”는 주제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비슷한 말 같지만, 사실 서로 다른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무엇이고 틀린 것은 무엇일까요? ‘다르다’의 사전적 정의에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령 ‘사과와 배는 다르다’라고 하지, ‘틀리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 반면, ‘틀리다’의 사전적 뜻은 ‘사실이나 이치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이기에, 옳고 그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 뜻과 쓰임이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이 차이를 명확히 분별하지 않고, ‘다른 것’을 ‘옳고 그름의 관점, 즉 흑백논리의 관점’으로 저울질하여 서로 간에 오해나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곧,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서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하나의 예’로서, 그림 하나를 모니터를 통해 보여 드립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그림이 어떻게 보이시는 지요?... 이 그림에서, 남자는 트럼펫을 들고 자신의 연주 실력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마를린 먼로를 닮은 미모의 여성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이시나요? 악기를 연주 중인 악사입니까? 아니면 아름다운 여성입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이 그림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이를 악사라고 우기면 악사가 될 것이고, 여성이라고 우기면 여성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일보다는, 이 그림처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에서 판단한 자기주장만을 내세워, 그것과 대립하는 모든 것은 틀린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의식구조에서는, 나와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곧, 나와 생각이 다르면 옳지 않은 것으로 보는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만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만 저울질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에게 ‘당신 생각은 틀렸어!’라고 열을 올리거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경우, 나아가 싸움까지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실상, 이런 모습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서도 보이고 있음이 사실이며, 이러다 보면 서로 간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을 맞아,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다르다.”는 이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가 다시금 기억하고 이를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우리들이, 우리 본당 공동체가, 우리 민족이, 그리고 갈라져 있는 남한과 북한이 화해하고 일치할 수 있길, 그리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게 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