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 하창식 프란치스코 / 수필가 csha@pnu.edu
성실한 공무원이자 한 집안의 자상한 가장이었습니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날벼락을 맞았던 사건이 새삼 생각납니다. 투신자살하던 한 젊은이에게 부딪혀 그만 안타깝게 목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한 젊은이 때문에 애먼 목숨을 잃은 그 가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도 비슷한 경험들을 많이 하지요. 우연히, 정말 우연히, 이런저런 불행한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몇 년 전에 제 동료 한 분은 건물 밖에 있는 다른 동료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쫓아 나오다가 현관 유리창에 부딪쳤습니다. 이마가 찢어지고 눈을 크게 다쳤습니다. 실명할 뻔했던 큰 사고였습니다.
그런 교회의 가르침을 머리로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제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배워 익히게 된 가르침 중의 하나는 바로‘받아들임의 신비’가 아닌가 합니다. 신앙이 아예 없었을 때나 새내기 신자일 때엔 저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우연에 대해 모든 것을 운명으로 치부했습니다. 드라마 같은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머리로‘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미사에 참례하여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기도하며 성경과 신심서적을 읽는 세월이 더해 갈수록,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웃들에게 일어난 불행한 우연에 대한 원인을 따지려고 하기보다, 알고 있든, 생면부지이든, 이웃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제게 우연히 일어난 불행에 대해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려고 애쓰는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더 큰 불행이 아니라서 다행이고, 그런 불행한 우연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늘 조신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갖도록 해 주신 주님의 손길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