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23호 2017.02.26 
글쓴이 권순호 신부 

성경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 해도 돈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당에 신축 기금을 내려고 해도, 주일 헌금을 내려고 해도 돈이 필요합니다. 돈을 무조건 나쁘게 봐야 하는 것일까요?

권순호 신부 / 주례성당 주임 albkw93@hotmail.com

  과유불급(過猶不及) 즉‘지나치면 모자람만큼 못합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도한 믿음을 두면 우상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돈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바로 하느님과 같습니다. 가난은 바로 우상이 되어버린 재물을 멀리하고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물을 버리고 금욕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의식주의 최소한 필요마저도 거부하고 극단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덕으로서의 가난과 빈곤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덕으로서의 가난은 우리 삶에 최소한 필요한 것만을 지니는 것인 반면, 빈곤은 삶에 필요한 것조차 끊어 버리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빈곤이 아니라 바로 가난의 덕을 가르치십니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욕망하기를 부추기는 사회 속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필요 이상의 음식 섭취로 살이 찌면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나 단식을 하듯이, 하느님을 따르는 건강한 영적인 삶을 위해 우리도 재물에 대한 단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전 한 닢을 헌금으로 넣은 과부를 칭찬하시며 결코 헌금의 많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많아서, 사랑과 믿음이 없어서, 하느님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96 2253호 2014.01.05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통신 수단이 발달하면서 신앙생활에도 많은 편리함을 줍니다. 요즘처럼 바쁜 사회에서 굳이 성당에 가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고해성사를 받거나, 텔레비전으로도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참 좋을 듯합니다. 권순호 신부  103
95 2251호 2013.12.29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근데 막상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자로서의 올바른 쉼이란 무엇일까요? 홍경완 신부  98
94 2249호 2013.12.22  육신의 부활을 믿기에 화장을 금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유지에 따라서 화장을 선택한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장재봉 신부  155
93 2248호 2013.12.15  구약에 묘사된 하느님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곤 합니다. 백성들에게 심판의 벌을 내리시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협하는 다른 민족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대하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왜 구약에서의 하느님 모습은 그러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홍성민 신부  126
92 2247호 2013.12.08  요즘에 남편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많이 힘듭니다. 남편 이름으로 미사를 봉헌하거나 남편에게 팔찌 묵주를 차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권순호 신부  148
91 2246호 2013.12.01  부부 사이가 금이 갔습니다. 그런데 배우자는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니 받아들이자고 합니다. 반감이 생깁니다. 어디까지가 과연 하느님의 뜻인가요? 홍경완 신부  242
90 2245호 2013.11.24  세례 성사 때에 세례명을 정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호성인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장재봉 신부  122
89 2244호 2013.11.17  평일 미사에 자주 참여하는 편이지만,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미사예물은 봉헌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기도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지향으로 미사 예물을 봉헌한 사람과 예물을 봉헌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지향을 기도한 사람과는 미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은총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합니다. 홍성민 신부  103
88 2243호 2013.11.10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간식이 무엇이 나올까만 관심이 있지, 딱딱한 교리나 미사 참례에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 신앙 교육을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권순호 신부  320
87 2242호 2013.11.03  아는 분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허망한 것인지 새삼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129
86 2241호 2013.10.27  방송에서 어느 스님이 선과 악은 상대적이라고 설명하던데요. 이순신 장군의 위장전술이 우리에게는 선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악이라는 예를 들더군요. 그런 어이없는 주장에 관하여 꼭 집어서 반박하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장재봉 신부  149
85 2240호 2013.10.20  주위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어도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없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도는 왜 하고, 성당에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홍성민 신부  190
84 2239호 2013.10.13  ‘진리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로 표현될 수 있나요? 권순호 신부  146
83 2238호 2013.10.06  흔히 기복신앙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왜 잘못되었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홍경완 신부  1564
82 2237호 2013.09.29  성경을 효율적으로 읽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는 어떤 성경을 선택하면 좋을까요? 신부님께서 기쁠 때와 슬플 때 용기가 필요할 때에 읽고 도움을 얻는 성경도 알고 싶습니다. 장재봉 신부  251
81 2236호 2013.09.22  성체를 모시면서 제가 깨끗하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고, 이게 모령성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같은 내용으로 고해성사를 보는 것도 부담됩니다. 홍성민 신부  210
80 2234호 2013.09.15  저는 오랫동안 주일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 활동을 하였습니다. 저의 봉사와 희생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의 삶에 아무 이익이 되지 않는 시간 낭비였다는 회의가 옵니다. 권순호 신부  128
79 2233호 2013.09.08  “창세기 첫 부분이 설화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탄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지인의 질문에 답이 막혀버렸습니다. 홍경완 신부  105
78 2232호 2013.09.01  세례 대부님과는 연락이 없습니다. 견진 대부님을 새로 정하라는데,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장재봉 신부  344
77 2231호 2013.08.25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에서 성령 카드 뽑기를 하였는데, 제가 뽑은 성령의 은사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려움이 성령의 은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느님을 더 친근하게 느끼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져야 은총 아닌가요? 홍성민 신부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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