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737호 2022. 12. 25 
글쓴이 손삼석 주교 

우리 안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기를...

 
손삼석 요셉 주교

 
   작년(2021년)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유럽연합 사무국이 종교 차별의 이유로 “크리스마스” 대신 “공휴일”(holiday)이라는 단어를 쓸 것을 권장한 데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강하게 질타하셨지요. 그 이후 이 권장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고, 며칠 만에 철회되는 소동을 겪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탄의 참 의미는 잊고 단순한 축제로만 여기는 듯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탄을 2천년 전 이스라엘 한 지방,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성탄이 지금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사목자들 역시 성탄이 오면 강론 준비 등 여러 일에 마음을 쏟다 보니 성탄의 참다운 신비를 체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교우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라지만 예년 같은 설렘과 기대는 없었다. 그렇게 대림절 4주가 지나고 드디어 성탄 대축일을 맞았다. 조심스레 성탄 밤 미사엘 가고, 오늘 성탄 낮 미사에 참례했다.”  어느 교우가 쓴 글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듯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예수님의 성탄을 한평생 자신의 화두로 삼고 사셨던 분입니다. “아무리 성탄이 수백 번 계속된다 해도 여러분 각자 마음 안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강조하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내 안에 잉태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나자렛 마리아가 그리하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유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항상 낮은 곳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본능과 이기적 삶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불우한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 안에 예수님은 탄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하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복잡하고, 소음이 가득 차고, 온갖 세상의 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예수님이 내 안에 탄생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겠습니다.’라고 낮은 자리에서 기도해보십시오. 그분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구상 시인의 시 “성탄을 일흔 번도 넘어”를 일부 인용합니다.

 
성탄을 일흔 번도 넘게 맞이하고도
나의 안에는 권능의 천주만을 모시고 있어
저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신
그 무한한 당신의 사랑 앞에
양을 치던 목동들처럼
순수한 환희로 조배할 줄 모르옵네.

 
   우리의 처지를 헤아리시어 가장 미천하게 오신 그 크신 사랑에 고개 숙여 경배드립시다. 이번 성탄에는 우리 안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도록 편안한 자리를 마련합시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905호 2025. 12. 28  사랑으로 물들어 가는 가족 이요한 신부 
2904호 2025. 12. 2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요한 1,5ㄱ 참조) 신호철 주교 
2903호 2025. 12. 21  믿고 순종하는 이를 구원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 file 한인규 신부 
2902호 2025. 12. 14  자비롭고 선한 사람 file 손지호 신부 
2901호 2025. 12. 7  방향전환 file 이재석 신부 
2900호 2025. 11. 30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file 김병수 신부 
2899호 2025. 11. 23  모순과 역설의 기로에서 file 김지황 신부 
2898호 2025. 11. 16  가난한 이들은 기다릴 수 없다 file 이상율 신부 
2897호 2025. 11. 9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file 최정훈 신부 
2896호 2025. 11. 2  우리의 영광은 자비에 달려있습니다 file 염철호 신부 
2895호 2025. 10. 26  분심 좀 들면 어떤가요. file 최병권 신부 
2894호 2025. 10. 19  전교, 복음의 사랑으로 file 김종남 신부 
2893호 2025. 10. 12  우리가 주님을 만날 차례 file 한종민 신부 
2892호 2025. 10. 6  복음의 보름달 file 김기영 신부 
2891호 2025. 10. 5  느그 묵주 가져왔나? file 김기영 신부 
2890호 2025. 9. 28  대문 앞의 라자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file 정창식 신부 
2889호 2025. 9. 21  신적 생명에 참여하는 삶 file 조성문 신부 
2888호 2025. 9. 14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 file 박재범 신부 
2887호 2025. 9. 7  더 크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file 이재원 신부 
2886호 2025. 8. 31  행복을 선택하는 삶 file 박호준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