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734호 2022. 12. 4 
글쓴이 이영훈 신부 
아픈 세대를 위한 미안함과 위로 그리고 연대
 
 
이영훈 신부 / 노동사목

 
   20년 전 너무나 가슴 아파했던 뉴스가 아직도 저에게서 떠나가지 않습니다. “나는 어린이인데 ….”라는 내용이 반복되는 10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의 자살 유서 내용입니다. 이 유서에는 그 나이 때 놀지 못하고 빽빽한 일정표에 따라 휴일도 없이 밤늦을 때까지 수많은 학원들을 다녀야 했던 한 아이가 왜 어른들은 자신보다 더 많은 여유로움 속에서 즐기며 살고 있는가라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4년 세월호, 그리고 2022년 이태원 등 수많은 아이들, 젊은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정확하게 일치되지는 않겠지만 저는 ‘20년 전 그 아이의 세대’가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아니, ‘나 자신’이 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우리 사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여전히 무관심했고 방치했다는 죄스러움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이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위로를 건넨 적이 있지만 왠지 이 말이 위로라기보다는 책임 회피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플 수밖에 없는 청춘이 아니라, 그 아픔이 없어지도록, 줄어들도록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그러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 왔는지 오히려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에게 계속 되물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 청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십니다. “아이야, 일어나라.”(루카 8,52)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딸의 죽음에 슬퍼하는 부모와 진심으로 함께하는 사람들, 이미 죽었으니 가만있으라는 사람들, 심지어는 예수님을 비웃던 사람들과 같이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향한 다양한 모습들을 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고통으로 나아가 마주하시고 손을 잡으십니다. 인간 고통의 원인인 우리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 그리고 불의한 사회 구조의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인간 고통과 죽음을 향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직접 보여주십니다.
 
   고통 앞에서는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파하는 야이로의 딸과 같은 지금의 세대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관심과 회피, 책임 전가와 어설픈 위로 그리고 주저함과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고통을 접하고 분노하며 우리의 안락한 고립에서 벗어날 때까지”(『모든 형제들』 68항)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안함을 대신하는 것이고, 진정한 위로이자, 그들을 고통에서 희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대입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97호 2025. 11. 9  2025년 부산교구 평신도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추승학 베드로 
2896호 2025. 11. 2  나를 돌아보게 한 눈빛 김경란 안나 
2895호 2025. 10. 26  삶의 전환점에서 소중한 만남 김지수 프리실라 
2893호 2025. 10. 12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정성호 신부 
2892호 2025. 10. 6  생손앓이 박선정 헬레나 
2891호 2025. 10. 5  시련의 터널에서 희망으로! 차재연 마리아 
2890호 2025. 9. 28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김동섭 바오로 
2889호 2025. 9. 21  착한 이의 불행, 신앙의 대답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88호 2025. 9. 14  순교자의 십자가 우세민 윤일요한 
2887호 2025. 9. 7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권오성 아우구스티노 
2886호 2025. 8. 31  희년과 축성 생활의 해 김길자 베네딕다 수녀 
2885호 2025. 8. 24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탁은수 베드로 
2884호 2025. 8. 17  ‘옛날 옛적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83호 2025. 8. 15  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박시현 가브리엘라 
2882호 2025. 8. 10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2881호 2025. 8. 3  십자가 조정현 글리체리아 
2880호 2025. 7. 27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걸으리라. 도명수 안젤라 
2879호 2025. 7. 20  “농민은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하느님의 정원사입니다.” 서현진 신부 
2878호 2025. 7. 13  노년기의 은총 윤경일 아오스딩 
2877호 2025. 7. 6  그대들은 내 미래요, 내 희망입니다. 이나영 베네딕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