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시기가 또 다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이 시기의 의미에 대해 말하라면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러면 ‘무엇을 기다리는가?’ 묻지 않을 수 없으며, ‘어떻게 기다리는가?’를 묵상하게 됩니다.
기다리는 일은 상황에 따라 반가운 일일 수 있지만, 반대로 지루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일은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일은 아니므로 분명 희망으로 가득 찬 마음의 상태가 맞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정말 그런 마음으로 기다립니까?
기분 좋게 기다리는 일들을 나열해 보지요.
- 오랜만에 준비한 해외여행을 기다린다.
- 생애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에 입주할 날짜를 기다린다.
- 곧 태어날 나의 아기를 기다린다.
- 재검을 받고 완치 판정을 기다린다.
이에 비해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어디쯤, 얼마만 한 크기로 자리하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기다리는 일’ 자체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어렸을 땐 갖고 싶은 물건을 주문하고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어디쯤 배송되고 있는지 살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조급함은 제법 사라졌고, ‘오겠지, 때가 되면 오겠지’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림 시기는 목전에 주님의 성탄을 기다린다는 의미와 함께, 미사 때 늘 고백하였던 대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린다는 의미도 동시에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는 전례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하지만, 주님의 재림에 관해 우리의 할 일, 회개와 속죄가 반드시 동반됩니다.
주님의 성탄, 크리스마스는 기다릴만한데,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맞게 되는 상황들은 어떻습니까? 오늘 복음에 소개되지요. 노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먹고 마시고 있다가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가는 상황, 함께 있던 두 사람도 각각 그 운명이 달라지는 일, 도둑이 예고 없이 집으로 들이닥치는 상황.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때가 되면 오겠지’ 하다가는 낭패를 맞이할 것이니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왔고, 낮이 가까이 왔다며 빛의 갑옷으로 갈아입기를 재촉합니다. 그날은 연습게임 없는, 일생 단 한 번의 날이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회개와 보속으로 늘 깨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복음 앞에 나를 놓고 진지하고 솔직하게 묵상해 봅시다. 첫째, 주님의 성탄을 나는 어느 정도로 기다리고 있는가? 둘째, 거기에 합당하게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