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가을

가톨릭부산 2022.10.26 10:30 조회 수 : 16

호수 2729호 2022. 10. 30 
글쓴이 김희님 마리아 

향기로운 가을
 
 
 

김희님 마리아 / 장림성당, 시인
huinim6843@daum.net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도 불심이 깊으신 시부모님께서는 성당에 다니는 며느리인 나를 걱정하셨다. 남편의 설득으로 결혼은 했지만 시부모님께서는 해마다 나를 데리고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셨다. 우리집에 오실 때마다 성모상 때문에 안 들어오려고 하셔서 남편은 성모상과 십자가를 숨겨놓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시부모님께서 오시면 마음을 다해서 대접해드리고 조금이라도 서운하지 않게 해드렸다.
 

   시댁에 소소한 걱정거리나 우환이 생기면 성당 때문이라고 화살이 나에게 돌아와도 그럴수록 가정의 평화를 주시라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더욱 가정에 충실했다.
 

   우리 부부는 노심초사하시는 시부모님의 심기를 편하게 해드리고 점수를 따기 위해 시동생들을 도시로 데려와 공부 뒷바라지를 하며 노력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시동생들도 모두 결혼을 하고 시부모님께서도 구순을 넘기셨다. 사십여 년을 나를 지켜보신 시어머님께서 “너는 참 양반이다.”하시면서 “성당은 제사도 지내고 괜찮다.”고 인정하신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미움을 받았던 세월이 서운하기도 하고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함께 지냈던 시동생들이 내 편이 되어주니 든든하고 고맙다. 지금은 조카들도 성당에 다니고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시누이의 아들도 묵주 반지를 끼고 성당을 다닌다고 해서 축하한다고 했다. 긴 세월 동안 시댁에서 성당 다니라는 권면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지금 이렇게 성당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성당 다닌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삶 안에서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종교도 함께 본다. 그리고 존경도 하고 욕도 한다. “성당 다닌 사람이 저 모양 저 꼴이냐”는 그런 욕은 듣지 않도록 언행을 조심하는 것도 큰 신앙 증거라고 생각한다. 과일도 익어보면 그 맛과 향을 알듯이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우리 가족을 평화로 지켜주신 주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는 나도 가을을 걷고 있다. 누구를 미워하는 시간도 아깝고 따뜻하게 사랑해도 부족한 세월이다. 오랫동안 체증처럼 아프게 숨을 조였던 것들을 모조리 흘려보내고 싶다.
 

   성당에 다니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는 삶이 아닐까.

   오늘도 사랑이신 하느님께 그리고 자비의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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