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양산 온유하신모후(제26) 꼬미시움 훈화
10월 묵주 기도 성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 모든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가 하늘나라의 열쇠가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교회에게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은 문화적, 사회학적, 정치적 혹은 철학적 범주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신학적 범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에게 “당신의 첫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이 신적 우선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필리 2,5) 가질 자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으로 고무된 교회는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가르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실천에서 우선성을 갖는 특별한 형태이며, 교회의 모든 전통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선택은 - 베네딕토 16세가 가르친 것처럼 - “그분의 빈곤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할 만큼,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절대적입니다.” 그것이 제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선택> 中에서
10월 묵주 기도 성월에 특별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으면 합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어느 특정 계층이나 부류만을 위한 교회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부자만을 위한 교회가 없듯 가난한 사람만을 위한 교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황님의 권고 말씀처럼 우리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마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의 마음과 무엇보다도 우리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마음이 헤아려지기 때문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성모님은 당신 자녀들을 하나하나 모두 보살펴주시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고통받는 자녀를 더 애써 돌보십니다.
우리 사회의 힘없는 약자들, 제 목소리조차도 내지 못하는 이들, 고통 속에 앓고 있는 이들,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사는 이들. 우리가 이들을 외면하고서 어찌 성모님 앞에 기도할 수 있겠으며,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2022년 10월 9일, 양산성당 주임 석판홍 마리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