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723호 2022. 9.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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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온천성당 · 전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
몇 해 전 양산 지역의 순교자에 관한 구술을 국한문 혼용으로 기록한 증언록을 발견하였다. 1948년 3월 6일 경남 울산부 범서면 굴화리에서 89세인 정 마리아가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한 6명의 순교 사실을 진술한 것이다. 6명의 순교자는 정 안토니오 회장(구술자의 아버지), 이 베드로와 그의 두 아들, 그리고 박 스테파노와 유경서이다. 이 증언록에는 이들이 양산에 거주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병인박해 기간인 1868년에 잡혀 양산 관아에 압송된 이후 상급관청인 통영에 가서 순교한 내용과 그 과정이 적혀있다.
놀라운 사실은 증언록에 유경서가 등장한 것이다. 유경서는 30여 년 전 필자가 동래지역 천주교 수용자를 조사할 때 그 행적을 찾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에 관해서는 『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에 ‘동래읍 근처 사람으로 통영에서 치명하였다.’라는 단편적인 행적만 전해질 뿐이었다. 이를 토대로 동래지역과 인근 지역 종족들의 조사와 더불어 공공도서관에 소장된 관변자료를 모두 조사하였다. 또한 박해 당시의 조사 보고 체계를 고려하여 상급기관 내지는 담당 행정기구의 것을 모두 검토하였다. 특히 통영, 좌수영, 좌병영, 경상도 감영의 기록은 집중 검토하였으나, 해당 시기의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드물었다.
유경서의 행적에 대해서 이렇듯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그의 처형 및 그 후의 향방은 전혀 알 수가 없어 오랫동안 미완인 채로 남겨져 있었다. 그런데 바로 양산지역 순교자들을 증언한 구술기록에서 유경서의 이름과 함께 그의 행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의 유경서가 바로 증언록에 기록된 유경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경서는 어머니와 단둘이 정 안토니오 회장의 옆집에 살았다. 유경서가 통영으로 이송될 때 그의 어머니도 따라가서 아들의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물에 적신 한지를 얼굴에 여러 겹 붙여 질식사시키는 백지사형을 당할 때 나이 든 사람은 바로 숨을 거두는 반면, 당시 서른 어름의 젊은 유경서는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배교할까 걱정한 그의 어머니의 마음 또한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정 안토니오는 생의 마지막 길에서도 “우리는 좋은 때다. 절대 배교 말아라. 배교해도 죽인다.”라며 사형장의 교우들을 격려하며 그들과 함께 천주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빛나는 순교자의 그 마음을 우리가 외면할 수 있을까. 9월, 순교자 성월에 그들의 신앙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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