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일군 사람들

가톨릭부산 2022.09.14 11:13 조회 수 : 27

호수 2723호 2022. 9. 18 
글쓴이 장현우 신부 

천국을 일군 사람들


 
장현우 신부 / 당리성당 주임


 
  오늘은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자들은 100여 년간의 무수한 박해 속에서도, 목숨을 다해 그분께 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과연 세상의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들이었을까요? 현실 감각 없이 내세만을 바라며, 그렇게 단순하고 순진한 결단을 내린 걸까요?
 
   우리나라의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매우 현실적인 실학자들이었고, 또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선교사의 활동도 없이 자발적으로 서양 학문들을 탐독하며 토론했고, 그 안에 담긴 종교적·신앙적 의미를 스스로 깨우쳤고, 그 가르침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엄청난 기도와 희생으로 노력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르침과 새로운 우주관, 새로운 인생관을 신앙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가난과 배고픔과 눈물 속에서도 참행복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신분의 귀천을 넘어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는 세상, 권력과 명예와 재물이 아닌, 용서와 배려와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세상, 파벌과 당쟁과 사리사욕이 아닌 나눔과 섬김이 가득한 세상, 그러한 세상을 신앙 안에서 알게 되었고, 그러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신분과 계급을 넘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렸어야 할 존엄이 회복되고 존중되는 세상, 복음으로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꿈꿨습니다.
 
   또한 이들의 가르침과 실천을 통해 많은 이들이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들이 실천하는 삶의 모습 안에서 어렴풋이나마 천국을 경험했습니다. 평민과 상민이 사대부와 한 방에서 기도하고, 대화를 나누고, 겸상하며, 서로를 형제라 불렀습니다. 당시 유교적 문화 속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체험하며, 이러한 세상, 천지가 개벽할 세상이 꼭 오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한 새로운 세상에 매료된 우리 신앙 선조들은, 이 기쁜 소식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토록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시선을 열어준 신앙이었기에, 비록 순교를 하지 못한 이들까지도, 박해를 피해 깊은 산 속에서 교우촌을 이루며,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작은 천국을 이루며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꿈꾸고 일구어 나갔던, 그리고 목숨으로 지켜냈던 천국의 삶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이루어 내고자 다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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