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양산 온유하신모후(제26) 꼬미시움 훈화
명품 신부
일전에 우연히 사제들이 보는 어느 정보교환지에 실린 ‘명품 신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 내용보다는 ‘명품 신부’라는 제목 자체가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많은 것을 되짚어 보게 하였다. ‘명품 신부’라…. 다들 명품을 선호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이젠 신부까지도 명품을 찾게 되는가 보다 생각하니 씁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왜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 세상 모든 것이 다 저울질당하고, 도마 위에 오르는데 예외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못내 아쉬움이 들었다. 무릇 모든 존재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유일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사제든 똑같은 사제는 없다.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달란트와 특징으로, 가지각색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명품 신부’라는 말을 일컫다가, 문득 ‘카멜레온 신부’라는 말이 생뚱맞게 튀어나왔다. 다음 내용은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강준만, 인물과 사상사)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카멜레온은 은유적으로 ‘변덕쟁이, 경박한 사람, 기회주의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카멜레온 효과’에서 그 용법은 부정적인 게 아니다. 이와 관련, 김광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성은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심리학 용어 ‘카멜레온 효과’와 통한다.……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을 ‘카멜레온 인간’이라고 부른다.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여러 가지로 바꾼다는 것이지, 일관성이 없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주위 환경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는 것, 무엇보다 그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능력은 여성이 훨씬 더 강하다.”
이른바 ‘카멜레온 효과’라는 측면에서 볼 때, ‘카멜레온 신부’란 공감력이 뛰어난 신부, 주위 환경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는 신부, 상황이나 여건 변화에 관심을 갖는 신부라 할 수 있겠다.
사제의 삶은 늘 떠남을 목전에 두고 사는 삶이다. 또한 사제는 관할 교구장 주교의 명에 순종하여 살아갈 뿐, 어디서 무슨 일을 맡아 할지 모른다. 어디를 가고 싶다고 가는 것도 아니요, 또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명을 따를 뿐이다.
어김없이 인사이동 철이 다가왔다. 짐을 싸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 지난 4년, 부족하고 미흡한 점도 많았을 것이다. 아직도 후덕하지 못한, 여전히 못난 구석 때문에 알게 모르게 적잖은 실망과 상처도 주었을 것이다. 하나하나 차분히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용서를 청하고 싶다.
‘명품 신부’는 고사하고 적어도 ‘카메레온 신부’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 ‘카멜레온 신부’가 되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인사이동 발표가 나면 어디든 가서 사제로 살아야 하는 처지에, 뛰어난 공감력으로 교우들을 대하고, 지역적인 특성과 교우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맡은 소임지 환경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며, 변화된 여건에 관심을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명품 신부’란 ‘카멜레온 신부’가 아닌가 싶다.
그간 많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함께 해 준 교우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성모님의 군사로서 굳건하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희생과 봉사로 성모님의 모범을 이어가는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의 간구하심으로 늘 행복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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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반갑습니다. 올해 8월 사제 정기인사로 양산성당 주임을 맡게 된 석판홍 마리오 신부입니다. 몇 해 전, 사제 인사이동을 앞두고 적은 글을 함께 나눕니다. 이번 사제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사제를 맞이한 본당 교우들과 새로운 부임지에 파견되어 새로운 소임을 맡게 된 사제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버텨온 각 공동체에 활력을 주는 은총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각 공동체의 기초를 다지는 레지오 단원들의 항구한 기도와 굳건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2022년 9월 18일, 양산성당 주임 석판홍 마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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