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717호 2022. 8.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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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선정 헬레나 |
박선정 헬레나 /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whitenoise99@hanmail.net
“작두가 어떻게 사랑인지 얘기해 줄게. 잘 들어봐.”
작두는 농촌 최고의 일꾼이던 소의 여물을 썰기 위한 도구였다. 몸값도 몸값이지만 소 없이는 일을 못 하던 시절이라, 어른들은 자식보다 소를 더 챙겼다. 소는 배 둘레 크기만큼이나 많이 먹는다. 그러다 보니 소의 먹이를 구하고 저장하는 일이 농부의 또 다른 주요 업무였다. 가을에 수확한 볏단은 물론이고, 여름철 들판의 푸성귀를 보이는 족족 베다 말려서 겨울을 준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의 필수품이 작두다. 저녁 해 질 무렵이면 집마다 작두 누르는 소리가 담을 넘었다. 철커덕 턱, 철커덕 턱.
작두 일은 보통 작두에 풀을 앗아 주는 사람과 그것을 눌러 자르는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일했다. 그 과정에서는 둘의 호흡과 리듬이 아주 중요한데, 작두가 내려오는 순간 그 안으로 풀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일부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말 그대로 사달이 났다. 농촌에서는 손가락 마디 하나가 날아간 아이나 어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을 대신해 우리 3남매를 키우신 할아버지는 아주 무서운 분이었다. 특히 오빠는 손자이기 이전에 지 몫을 해야 하는 일꾼이었다. 그러니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줄곧 야단을 맞았던 오빠는 60을 바라보는 지금에서도 여전히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할배, 억수로 억울하겠심더.”
그 증거물 1호가 바로 작두다.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린 삼남매에게 작두 일을 거들게 하지 않았다. 아니, 작두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아차 실수라도 하는 순간 순식간에 어린 손가락이 잘려 나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된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할아버지는 혼자서 묵묵히 헛간에 앉아서 그 많은 풀과 볏짚을 작두로 자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 본 적이 없는 그 무뚝뚝하고 고집 센 할아버지는 그렇게 우리에게 당신도 모르는 사랑의 언어를 당신 몸의 언어로 보여줬지만, 정작 우리는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만 가지 다른 문법으로 된 ‘사랑의 언어’가 해석되지 못한 채 비처럼 암호처럼 무의미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정작 ‘내가 못 보고 못 듣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사랑이 죽은 세상’이라며 한탄만 하고 있다. 당신과 나의 언어가 만나려면 ‘공감’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우린 그걸 할 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사랑의 언어를 배우면 어떨까. ‘작두’가 어떻게 ‘사랑’인지를 이해하는 기적 같은 언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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