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을 풀다

가톨릭부산 2022.07.06 09:41 조회 수 : 23

호수 2713호 2022. 7. 10 
글쓴이 현애자 로사리아 

매듭을 풀다

 

현애자 로사리아 / 개금성당 ·  시인, 수필가
aejahyun@hanmail.net



 

   삶이 어렵고 버거울 때, 매 순간 하느님 안에서 살았다. 기도를 통해 받은 위안은 뜨거운 힘이 되어, 병원에서 아픈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 봉사하며 상담도 했다. 내 나름의 나눔을 실천하는 작은 봉사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미사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시간적 여유를 은근히 즐겼다. 주일마다 미사는 빠지지 말아야 할 텐데, 하면서도 선뜻 길을 나서지 않았다. 코로나19는 나의 게으름을 치장하고 대변했다. 이러한 시간이 거듭될수록 미사에 가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어 주일이라는 개념도 없이 주일을 보냈다.
 

   그러던 중,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격리였다. 나는 바이러스의 침범을 받지 않을 거라는 만용, 참으로 어리석었다. 발열과 기침, 두통이 겹치는 심한 오한에 불안까지 덮쳤다. 나도 모르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코로나를 핑계 삼았던 나의 행위는 냉담 그 자체였다. 마음에는 항상 성당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으나, 그것을 보기 좋게 뭉갠 코로나는 나를 실제로 압박하는 무기가 되어 일주일 격리라는 통보를 받게 했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묵직한 돌덩이라도 올려놓은 듯 답답하고 복잡한 마음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가족들은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으나 내 마음에는 통증이 심했다. 집안일 등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할 테니 꼼짝 말고 쉬라고 했으나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진통은 깊었다. 그동안, 주일미사를 안 간 핑계들이 줄줄이 떠올라 나를 부끄럽게 하였으니 십자가 앞에서도 눈을 뜰 수 없었다.
 

   잊으려고 몸을 고단하게 해야 했다. 책을 정리했다. 곳곳에 성경 쓰기를 했던 흔적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성무일도, 9일 기도,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기도 등 수두룩한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께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에 휩싸였다. 
 

   코로나를 통해 나를 발견했다. 십자가 앞에서 멍하게 앉았거나 때론 눈물을 흘리거나 기도를 하며 지냈다. 해제 통보를 받던 날, 자정은 길었다. 날이 밝으면 제일 먼저 성당으로 가리라. 
 

   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해 주신 주님께 찬미 영광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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