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711호 2022. 6. 26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저마다 제 길에서 하느님을 향해

 
 
탁은수 베드로 / 광안성당, 언론인
fogtak@naver.com



 
   수십 년이 훨씬 지난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본당 신부님이 돌연 주일학교 고등부의 활동 중단을 선언하셨습니다.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고등부 셀 운영을 준비하던 동기들은 그야말로 멘붕. 위기에 빠진 고등부를 살리기 위해 동기들이 궁리한 방법은 ‘기도’였습니다. 신부님이 보란 듯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미사 후에 남아 하느님께 고등부와 함께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참여하는 학생이 늘어나자 마침내 신부님께서 학생들을 부르셨습니다. 신부님의 걱정과 학생들의 바람을 서로 이야기한 뒤에 열심히 공부할 것 등을 조건으로 고등부 활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주일학교 고등부 활동은 신앙생활의 좋은 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교회의 쇄신과 미래를 위한 교황님의 당부로 언제부터인가 ‘시노달리타스’란 단어를 자주 듣습니다. ‘함께 모여 교회의 갈 길을 결정하는 시노드 정신이 신앙의 여정 속에 구현되는 생활 방식’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솔직히 쉽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가 나에겐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다 앞서 말한 주일학교 고등부 부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우리는 몇몇 학생회 간부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였습니다. 모여서 잡담과 넋두리를 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목적이 있는 모임인 ‘친교’ 를 이뤘습니다.  점차 많은 동기들이 기도에 ‘참여’ 하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였고 방관자가 아니라 모두가 ‘주체’ 였습니다. 그리고 요지부동인 줄 알았던 신부님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 해 주셨고 신부님의 권위를 양보하시고 학생들의 순수한 뜻을 ‘존중’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며  ‘제 역할’ 을 강조하셨고 저희들은 신부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은 배 나오고 살찐 중년이 된 주일학교 친구들. 하는 일이 다양하고 사는 곳이 달라져 자주 만나지는 못 합니다. 하지만 저마다 제 길에서 제 몫을 하며 하느님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선 자녀들의 냉담, 신앙의 슬럼프 등 고민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사는 성당 동기들. 위기에 처한 고등부를 살려낸 신앙의 동지들이자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의 동반자들입니다. 성만이, 은아, 윤성이... 이 친구들 한번 보자고 해야겠습니다. 시노달리타스의 실천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친구들과의 만남을 하느님께서 예뻐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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