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과공지

부산교구 종합 보고서

 

I. 서론 과정

 

20211017일 주일 교구장 주교는 제16차 세계주교 시노드의 부산 교구 단계 개최를 선포했다. 교구는 주일 미사 중에 시노드의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향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기억하며 보편지향 기도를 바쳤다. 이어 1027일 부산교구 단계 진행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13일 첫 모임이 개최되어, 모임과 대화, 경청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교구 조직을 최대한 활용하여 의견을 수렴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사무처는 주임신부, 지구장 신부, 특수 사목 신부, 각 기관에 공문을 보내어 대화와 경청을 위한 모임을 독려했다. 공문은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간략한 설명, 주요 성찰 질문, 기도와 대화의 방법을 내용으로 했다. 선교사목국은 평신도협의회와 각 단체, 수도회, 전교수녀연합회의 모임과 대화를 안내하고 인도했다. 전산홍보국은 교구 주보와 홈페이지를 통해 시노드 안내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했다. 청소년사목국은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청년, 청소년들의 토론 마당을 개최했다. 전교수녀연합회는 본당 파견 수도자들의 대화와 모임을 주선했고, 평신도협의회는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도록 독려했다.

이에 따라, 각 본당은 모임을 개최하고 질문지를 배포하며 하느님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사제들은 지구 모임에서 의견을 나누었으며, 교구 각 단체와 기관 역시 평신도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교구 소재 수도회의 의견도 함께 수렴했다. 교구민 전체의 음성을 듣지는 못해 한계가 있긴 하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한 것은 뜻 깊은 일이었다. 부산교구 단계 진행위원회는 매달 모임을 통해 평신도와 청년, 수도자와 사제들이 제시한 의견들에 대한 공동 식별 작업을 이어갔다. 이를 토대로 부산교구 종합보고서를 준비하고 작성했으며, 202263일 교구장 주교는 본 보고서를 승인했다.

I. 본론 - 주제별 의견종합

 

1. 여정의 동반자 함께 걷기

 

함께 걷는다고 할 때, 먼저 신자들끼리 인간적 친교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교회 공동체 안에 분열이 생기고, 노인, 환자, 가난한 이, 냉담자, 장애인, 청년들이 소외되고 있다.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기 보다는 세속적 가치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향해 함께 나아가며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데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신앙생활 안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공동체 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본당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걷는다고 하면서도, 동떨어져 거리를 둔다. 주임신부와 본당 신자들 사이 대립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주임신부는 일부 기득권 신자들의 텃세와 세속적 가치관 때문에 사목활동이 어렵다고 하고, 평신도들은 주임신부가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여 힘들다고 한다. 사목자들 편에서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신앙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함께 걸어가도록 해야 한다. 신자들을 화합시키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사목자 스스로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본당 운영은 교우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면서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본당의 모든 사업은 평신도들과 충분한 토의를 거쳐 준비되고 진행되어야 하며, 본당 재정과 행정 역시 투명하고 공정하게 계획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청년, 청소년들의 신앙생활이 대단히 미흡한 현실이다.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고, 부모가 먼저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후속 세대에 대한 신앙 전수를 위해 기성세대가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비신자들과 이웃 종교인들을 향해서도 한 걸음 더욱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2. 경청 - 세상과 주변의 이야기를 올바로 듣기

 

평신도, 특히 여성들과 젊은이의 목소리가 경청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된 이유는 사목자의 권위주의와 기성세대 남성 중심의 사목회 구성 때문이다. 여성들은 순종하는 자세를 요구받고, 청년들은 경험이 부족하고 미숙하다는 이유로 쉽게 배제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듣기보다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해 있었다. 마음이 닫힌 채 소통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본당의 사제나 수도자들은 가르쳐 들려고만 했지, 경청하는 자세가 상당히 미흡했다. 사목자들은 신자들을 어떤 자세로 만나는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 자신을 낮추어 먼저 묻고 경청해야 한다.

교회의 소중한 전통인 병자 방문, 가정 방문은 소외되고 배척받는 이들을 경청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를 장려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각종 스마트 기기 등을 적극 활용하여 소통의 통로를 넓혀야 한다.

 

3. 발언 교회와 사회를 위한 용기 있는 발언

 

용기 있고 솔직한 발언이 어려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교구와 본당이 복음적 가치가 아니라 복잡한 인간관계에 따라 운영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직자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평신도와 사목자 사이 거리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부족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자기 관심사 말고는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본당 내 기득권 세력이 텃세를 부리고 군림하면서 공동체의 새로운 신자들 (신영세자 혹은 전입자들)이 발언할 기회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일부 신자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주임신부의 사목지침을 무시하고 인습과 악습을 확장시키면서, 사목자들 역시 어려움을 겪는다. 사목자들은 평신도들을 올바로 인도하기 위해 용기 있게 발언해야 한다. 평신도들도 이웃과 세상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도록 지속적으로 양성되어야 한다.

사제는 교구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지만, 양심적인 발언을 꺼리고 있다. 교구 조직이 관료적이고 수직적이어서 자신의 발언이 존중받고 경청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불이익을 당하고 반대 세력의 저항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워 침묵할 때가 많은 것이다. 평신도들도 용기 있는 발언은 지적, 질타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양심적인 발언을 진작시키기 위한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구와 본당 안에 험담과 뒷담화가 만연하다. 교회의 일치와 친교를 무너뜨리는 죄이지만, 이에 대한 죄의식조차 희박해졌다. 교구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다.

용기 있는 발언은 개인의 주관적 신념이나 세상의 가치관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척도로 삼고 공동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신앙인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이 용기 있게 발언할 수 있을 것이다.

 

4. 거행 기도와 전례의 올바른 진행

 

기도와 전례는 우리를 신앙으로 이끌어준다. 그러나 형식적이고 의무적이며, 타성에 젖어 전례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집전 사제의 성의 없는 미사 거행과 지루하고 준비되지 않은 강론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생길 때가 적지 않다. 전례와 공동체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을 체험하도록 모든 이가 정성을 다해야 한다.

사제와 수도자들은 신자들이 전례의 신비에 젖어들도록 인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사제와 수도자의 모습을 통해 평신도들이 신앙생활의 진면목을 알아갈 때가 많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먼저 기도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

신자들이 미사나 기도, 성사 등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전례 교육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전례봉사자들도 계속 양성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남성위주로 전례봉사자를 구성하는 관습이 남아있다. 성인 복사단, 독서자, 해설자 등의 활동에 남녀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본당공동체는 신앙과 전례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적 친목을 앞세우고 전례를 부차적으로 치부할 때가 적지 않다.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우고, 기도와 전례의 풍요로움을 맛들이도록 해야 한다. 기도 모임, 피정 등의 기회를 제공하여 신자들이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도록 사목자들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5. 공동책임 : 교회의 사명인 세상의 복음화에 적극적인 동참

 

평신도들 대부분은 교회 활동보다 사회생활을 우선시 한다. 세상살이에 시달리고, 가족 문제와 생활고에 지쳐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 활동에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기 어려워한다. 또한 개인주의에 편승하여 자기 편리와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양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현실이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도와 신앙에 토대를 두지 않고 활동에만 매달리니 아주 쉽게 세상 정신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사목회, 레지오, 각종 단체 등의 활동이 복음 선포로 이어지기보다 인간적 친목이나 자기만족에 그칠 때가 많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문제가 심각하다.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형제애를 익혀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웃과 세상을 향해 신앙을 증거할 수 있다.

성경공부의 기회는 적지 않지만, 신변잡기를 나누는 모임에 한정될 때가 많다.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익혀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6. 대화 진실한 대화를 위한 개인과 교회의 노력

 

진실한 대화를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현실이다. 대화가 중요하다고 알면서도, 실제로는 회피한다. 가장 큰 이유는 수직적 구조 안에서 명령 하달식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때문이다. 진실한 대화를 위해서는 열린 마음’, ‘만남’, ‘신뢰’, ‘인격적 관계 맺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성직중심주의는 교회 안에서 인격적 대화를 가로막는 주 원인이다. 주임신부를 대하는 평신도들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겉으로는 웃으며 하지만, 속으로는 저항한다. 주임신부 가까이 활동하는 이들의 심리적 거부감이 훨씬 강하고, 본당마다 주임신부에 대한 뒷담화와 불평이 적지 않다.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평신도들의 모순적인 자세도 문제이지만, 영적 돌봄을 실천하지 못하는 관료주의적 성직주의가 더 큰 문제다.

본당의 사목협의회 또한 특권 단체처럼 기능할 때가 많다. 평신도들의 마음을 읽고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신자들 사이 인격적 대화도 무척 부족하다. 인간적 친목을 나누는 소규모 그룹의 한계 내에서 대화가 이루어지고,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배타적이다. 본당 공동체 안에는 어르신 (노인), 성인, 청년 등의 여러 세대가 공존한다. 본당에서 적극 활동하는 이들의 연령은 주로 50대 중반에서 60대 후반이다. 이들이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젊은 세대를 아끼며 신앙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자신들만의 관계에 만족할 때가 대부분이다. 어르신들은 관심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청년들은 본당 안에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대 차이와 불필요한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격적 만남과 대화가 필수적이다.

본당에 대화의 창구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신자들 편에서 영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사제나 수도자와 대화하기를 원할 때가 있지만,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면담을 통해 영적 선익을 제공하는 사목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제들 역시 신자들과 만나 인격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교구장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꺼려한다.

인격적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삶의 첫 자리에 주님을 모실 때, 교회 공동체 안에 인격적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7. 교회일치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과 화합을 위한 노력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와 친교를 맺지 못하는 현실이다. 서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만연하다. 가톨릭교회 안에 다른 교파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일부 개신교회는 가톨릭교회를 비롯하여 다른 모든 교파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교구와 본당은 갈라진 형제 교회를 만나 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리적 충돌 지점이나 분열의 이유 등을 논쟁하기 보다는, 먼저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고 공동선의 실현을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타 종교와 자연스럽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교리를 존중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타 종교의 좋은 점을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도 있어야 한다. 비신자에게는 신앙생활의 기쁨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타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키워가야 이웃 종교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8. 권위와 참여 교회 안의 참된 권위와 참여

 

사제들은 교구의 중요한 일들이 사제단의 충분한 참여와 토의 과정 없이 결정되어 왔다고 여긴다. 이렇게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아예 무관심한 경우도 적지 않다. 교구의 기구들이 본당과 기관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드물다.

교구와 본당의 시노드적 기구는 성직자 위주로 구성되어 평신도들의 참여가 제한적이다. 평신도들은 교구와 본당이 성직자 중심적이고 수직적이며 일방적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한다. 실제 각종 기구들은 평신도들의 참여가 부족하고, 평신도 역시 책임감 있게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서로를 존중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과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본당 내의 사목협의회는 형식적 절차만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임신부가 사목의 중심이고 책임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직중심주의와 권위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에, 성직자들은 오히려 권위를 상실하고 있고, 평신도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더욱 강하게 취하고 있다. 사실 주임신부와 평신도협의회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본당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긴장감이 가득하다. 평협 회장단은 주임신부의 독단을 막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주임신부 또한 진정한 협력자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로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의 참여를 북돋우기 위해서 성직자는 평신도들에게 먼저 다가가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여 공동체의 영적 선익을 진작시키는 일에 평신도들이 참여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평신도들은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필요성을 자각할 때 책임감 있게 참여한다. 평신도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공동체 안에 영적 열매가 맺어질 것이고, 성직자들의 참된 권위도 다시 세워질 것이다.

 

9. 식별과 결정 올바른 의사소통의 과정과 진행

 

의사소통의 가장 큰 장애는 성직자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이다. 평신도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소통하는 정당한 절차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대화의 장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함께 식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당의 평신도협의회는 개인의 이익이나 주장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영적 선익을 먼저 생각하며,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하기를 원하시는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신앙 공동체는 세상의 관행이나 인습에 의존하지 않고 복음 정신에 따라 끊임없이 기도하고 식별하면서 하느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

교구의 중요한 일들도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참여하는 식별 과정을 통해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역시 식별과 결정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신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10. 양성 경청과 참여와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배움

 

경청과 참여와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다. 공동체와 개인의 영적 성장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데 있다. 인격적 만남, 기도, 애덕 실천이 중요하다고 알지만, 부담스러워하고 회피한다. 세례 받은 이들의 마음 안에는 영적 생명에 대한 갈망이 작용한다. 세상일에 분주하고 마음이 뺏겨 그 갈망이 약해졌을 뿐이다. 이를 인정하고 성령 하느님께 도움을 청한다면, 배움과 양성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사목자는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경 공부, 교리 공부, 영성 교육, 피정 등을 통해 신자들의 영적 갈망을 충족시키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교구와 본당은 외적 사업보다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성직자들부터 자신의 신원과 사명을 심화하는 지속적인 양성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 평신도들도 세속적 가치가 아니라 복음 정신에 따라 교회 안에서 생활하고 활동하도록 양성되어야 한다.

현재 교회 구성원들은 시노달리타스가 교회를 일으키는 방법이라고 알게 되었다. 시노달리타스의 중요성을 의식하며 이에 대한 교육과 양성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구와 본당의 운영을 고대하고 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 각자의 신원에 알맞게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을 밟아가야 한다. 사제 양성에서도 시노달리타스는 필수적이다.

III. 결론 - 종합 의견

 

부산교구의 하느님 백성은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고 있는가?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여러 의견들을 경청하고 수렴하고 종합한 결과,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답변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답답해하고 힘들어 하는 현실이다.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여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이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신자들에게 영적 생명을 전하는 데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성직자들도 신앙생활과 사목 활동을 우위에 두기 보다는 자기 안위와 편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직자들의 형제적 친교가 아쉽고, 교구 사제 영성을 찾기도 어려우며, 교구장과 사제들의 관계 역시 형식적이고 관료적이다.

교구와 본당의 시노드적 기구는 성직자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신도들은 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며 심리적으로 저항한다. 성직자와 평신도들 사이 사랑과 존경의 관계도 약화되었다. 교구에 파견된 수도자들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 힘겨워 하며, 자기 역할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금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영적으로 나약하고 아픈 현실이다. 서로를 향한 분석과 판단은 능하지만, 자신을 향한 성찰은 매우 부족하다. 마지못해 관계를 이어가면서 힘들어하고, 각자도생 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이를 방치하면, 하느님과 일치하고 이웃과 친교 하는 교회의 본질이 훼손될 수도 있다. 부산교구 교회는 영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어렵고 아픈 현실을 의식하고 직시해야 한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숨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를 청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신다. 세상의 가치와 인간적 재능이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를 낫게 해주시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 하느님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생명으로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청해야 하는 것이다.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을 밟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성직중심주의가 약화되어야 한다. 성직자는 섬기고 돌보는 사람이다. 성직자 스스로 신앙의 모범이 되어 평신도들을 참된 신앙으로 인도해야 한다. 평신도들을 가까이 하며 그들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순응해야 한다. 온유한 마음으로 인내를 다하여 평신도들을 경청하며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성직자들이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으로 양성되지 않았거니와 귀감이 되는 모델을 찾기도 어렵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굳센 믿음으로 의탁해야 한다.

평신도들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세속적 가치관에 따라 인간적 가치를 내세우며 교회에서 활동하면 공동체가 분열된다. 복음적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정화되고 성화되도록 신앙생활에 항구해야 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영적 갈망에 따라 기도하고 공부하며 애덕 실천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교구와 본당의 시노드적 기구는 평신도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활성화 된다. 성직자중심의 기구 운영은 평신도들의 책임 있는 참여를 가져오지 못했고, 이는 그대로 교구의 영적 손실로 이어졌다. 시노드 정신의 실천이 참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평신도와 수도자를 포함한 교구의 사목 평의회 개설도 필요하다.

800여년 전 주님께서는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교회를 고쳐 세워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가서 아파하는 나의 교회를 낫게 하여라.” 부산교구의 하느님 백성은 영적으로 나약하고 힘없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라는 사명을 받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부산교구의 주보,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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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2022년 부산교구 사목지침 가톨릭부산 2021.11.26 3180
285 죽은 신자들을 위한 전대사 기간 연장에 관한 교령 가톨릭부산 2021.11.03 1537
284 단계적 일상회복을 위한 거리두기 1차 개편에 따른 교구 지침 가톨릭부산 2021.11.02 2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