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이 아줌마

가톨릭부산 2022.05.11 11:26 조회 수 : 21

호수 2705호 2022. 5. 15 
글쓴이 박영선 크리스티나 
삐뚤이 아줌마

 
 
박영선 크리스티나 / 좌동성당. 시인, 서예가


 
   코로나19로 인해 그 어디에도 없던 힘든 시간을 함께 껴안고 가야 하는 동안 몸이 아프고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세상일을 핑계 삼아 멀어져가고 있을 즈음, 마음속 깊숙이 새겨진 삐뚤이 아줌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는 아침이면 빈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밥을 빌러 다녔던 그녀. 작은 체구에 남루한 옷, 입술의 큰 흉터로 개구쟁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고,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에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일상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며 상처로 얼룩졌을까. 
 
   동네에서 힘든 모습만 봐왔기에 그녀를 성당에서 마주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 어떻게 성당으로 향했는지, 세례를 받았는지, 세례명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누런 광목천으로 머리를 에워싸고 빛바랜 묵주알 한 알 한 알 손으로 굴려 가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를 바치던 그녀. 선뜻 손 내밀지 못하고 다가서지 못한 나의 행동, 따뜻한 마음 나누지 못한 나의 내면을 알게 되어 부끄러워진다. 주님의 사랑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어려운 그녀와 같은 모습 속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에 그녀에게 감사드린다. 
 
   장애를 품고 기도드리는 모습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누구에게나 도움 베풀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 착한 소녀. 평생을 가족들 학대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콩쥐 같은 성품으로 신앙을 지켜온, 손을 못 쓰는 장애를 가진 성녀 제르마나 쿠쟁(젤마나).
 
   학대받는 아이들의 수호성인이신 성녀를 생각하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라고 하신 주님 말씀을 묵상해본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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