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톨릭부산 2022.04.20 10:52 조회 수 : 28

호수 2702호 2022. 4. 24 
글쓴이 윤경일 아오스딩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윤경일 아오스딩 / 좌동성당·의료인
ykikhk@hanmail.net

 
   구두장이 시몬은 아내와 공동으로 입을 양가죽 외투를 사러 읍내에 나갔다가 옷은 사지 못하고 한 젊은이가 알몸으로 길에 쓰러져 동사 지경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몬은 자신의 옷을 입힌 후 그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시몬이 양가죽 외투는커녕 거지 같은 사내를 데리고 들어오자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시몬은 아내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부탁했고, 아내도 젊은이의 몰골을 보니 불쌍하게 여겨져 음식을 내어주었다.  
 
   사실 그 젊은이는 본의 아니게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게 된 천사였다. 하느님께로부터 지상에 내려가 한 여자의 영을 거두어오라는 명을 받은 천사가 그 여자 집에 도착해보니 막 쌍둥이 딸을 낳았는데 기력이 쇠하여 젖도 못 먹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숲에서 일하다가 그만 나무에 깔려 죽고 없어 갓난아기들을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연민에 사로잡힌 천사는 여자의 영을 거두지 못한 채 하늘로 돌아오다 강풍을 만나 날개가 부러져 지상에 추락하게 되었고 그때 구두장이 시몬에게 발견되었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자비심에 근간을 둔 행위를 하는데, 이처럼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불쌍한 이를 가엾게 여기는 자비로움으로 살아간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구호 활동하러 갔을 때 일이다. 일행 네 사람은 이른 아침 오지로 떠나야 했기에 전날 먹거리를 챙겨두었다. 시간이 되어 벌판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음식을 꺼내 보니 사과 두 개가 전부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일행 중 한 사람이 기력을 잃고 길바닥에 누워있는 이를 발견하고서 음식을 모두 내어 주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각자 사과 두 개를 쪼개어 반쪽씩 나누어 먹고 종일 다녔다. 신기하게 사과 반쪽으로도 오후 내내 배고픈 줄 몰랐다. ‘함께 나눈 빵은 본디 그 빵의 맛이 아니다’는 말이 있듯이 진정 빵이 필요한 사람과 나누었으니 그 사랑으로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것이리라.
 
   자비심은 어려움에 처한 형제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자비심은 신앙의 숨결과도 같다. 세상은 대립, 갈등, 폭력, 전쟁 등 무자비함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자비가 절실한 상황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이를 외면하지 않고 뒤처지는 이를 버리지 않으며 가난한 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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