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다해) 강론 – 받았으니, 내어 놓아야 함.
주임신부 2022. 1. 23, 범일성당
제가 새 신부가 되어 재미있게 본당에 머물던 어느 날, 교구장 주교님께서 저를 호출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로마 유학 다녀 오너라!” 그분의 이 한 마디 말씀으로, 저에겐 고생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하니, 교회 측에서는 ‘공부했으니, 이제 써 먹어야 한다.’며 이곳저곳에서 저를 잘 써 먹었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사람인 저로서는 교회를 위해서 당연히 ‘받았으니, 내어 놓아야’할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어느 신자분을 만나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신부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라고 물어 보셨는데, 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알고 보니, 30여 년 전에 제가 예비자 교리를 하여 세례를 받은 분이셨습니다.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여쭈어 보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그것을 내어 놓는 마음으로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활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이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이 강론을 준비하며, “받았으니, 내어 놓아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다음과 같은 성경 내용을 찾아 읽으시지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억압에서 해방시킴으로써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참조)
이러한 주님의 선포는 그 내용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 하느님의 영, 즉 성령께서 당신 위에 내리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으로써 기쁜 소식과 해방, 볼 수 있음과 억압에서의 탈출 등, 주님의 은혜로움을 이 땅에 구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성령을 받았으니, 받은 은혜를 주변에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바는, 우리도 ‘받았으니, 내어 놓아야 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내어 놓음’의 내용은 자신의 모습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움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러한 ‘내어 놓음’은 언제부터일까요? 그것은 ‘다음에, 시간이 날 때 내어 놓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의 내어 놓음’이어야 함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이 말씀으로써 알려 주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0)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도 주님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우리가 그리 살아야 함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은혜를 받으신 교형자매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받았으니, 내어 놓는’ 그런 우리 삶이었으면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삶의 모습이 ‘지금, 이 자리’의 우리 주변에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그런 멋진 모습으로 넘쳐나길 기원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