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신앙수기 공모전 우수상

 

말씀을 옮기다

 

방어진 성당 김영근 요한보스코

 

보이는 것이라고는 넓고 끝없이 펼쳐진 시커먼 바닷물뿐, 뒤를 돌아보아도 온 사방을 둘러보아도 흙 한 줌 솟아 난 곳이 없는 망망대해, 원유를 뽑아 올리는 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자들이 거주하는 최소한의 시설이 갖춰진 바지선 숙소에서 아침 일찍 시작되는 일과와 저녁 붉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숙소로 귀가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지루한 일상이 며칠이 지났을까? 육지도 그립고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도 보고 싶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가족과 도란도란 지내는 단순한 일상이 너무나 그리워지고 마음마저도 점차 약해지는 느낌을 가질 무렵, 오늘도 어김없이 바다 한복판 선상 플렛폼에서의 작업을 마치고 숙소 바지선의 침상에 누워 멀뚱이 상념과 망상에 빠져들 때 가슴 한쪽에서 은근한 가슴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잠을 청하였으나, 점점 압박감이 강해지기 시작하여 호흡곤란까지도 느낄 무렵이 되니 무서운 생각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나이지리아 남동쪽 100Km, 수심 750m 우산필드(usan field)에 설치되는 초대형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설비(Floating. Producting. Strage & Off loading). 말 그대로 거대 인공구조물이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는 이곳은 육지에서 배로 3시간 이상 걸리는 해상, 응급의료시설이라고는 기본상비약과 간호사 한 명뿐이다. 이곳에서의 갑작스러운 부상과 질병은 생명의 위험을 초래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가슴의 통증은 심해지고 호흡은 힘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등골이 오싹해지고 땀은 비 오듯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어쩔 줄 모르고 내 몸은 허둥대고 심장이 펄쩍펄쩍 뛸 때 강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황급히 묵주를 손에 쥐었다. 처음엔 기도문조차 외워지지 않던 묵주알을 돌리면서 성모님께 살려 달라고 매달리면서 밤새도록 마음과 몸을 진정시키려고 발부둥 쳤다. 평생을 성당에 다니면서 이렇게 간절히 묵주기도를 바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침 햇살이 선상의 둥근 창문으로 고개를 들여 밀 때 묵주알을 얼마나 세게 쥐었으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묵주알이 꽉 박혀 겨우 떨어져 나올 지경이었다. 아마도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내 몸에서 느끼는 통증과 싸우며 지쳐 묵주알을 그렇게 꽉 쥐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 살았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가슴의 통증이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밤마다 눈을 감을 때면 혹여 통증이 나타나지 않을까 조바심으로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점차 이런 기억을 지워갈 무렵 다시금 수시로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정말이지 호흡을 해도 숨이 끊임없이 모자라는 듯한 느낌과 함께 등에서부터 오는 가슴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게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다시금 묵주기도에 의지하며 간절히 묵주알을 굴리기 시작하였다. 며칠을 반복되는 통증과 불안감 속에서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해외파견 근무 오기 전 이웃에 사시는 어떤 자매님이 요한보스코 형제님, 해외 나가시게 되면 틈나는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보세요하며 성경과 필사 용지 몇 묶음을 주신 것이 생각나 2011811일 밤부터 가슴에 오는 통증과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성경을 필사하기 시작하였다. 볼펜을 쥐고 성경을 밤새 필사하다 자신도 모르게 펜을 쥐고 지쳐 잠들고 깨기를 며칠이 지난 후 스스로 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본사에 귀국신청을 하였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마련하는 동안 현지 숙소에서 며칠을 머물면서 다시 시작되는 통증을 버티기 위해 하루 한 끼 외에는 묵주기도와 성경필사에 매달렸다.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비행시간 12시간 동안 좁은 좌석에서 숨 가쁨과 가슴 통증을 억누르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기내식 한번 입 대지 않고 물 한 모금 넘기지 않은 채 묵주에 의지하며 버텨냈다. 그 당시 기내에서의 고통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좁고 복잡한 곳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한 검진센터에서 응급 검진을 받게 되었다. 심장 관상동맥 협심 73% 두 곳이라는 진단결과를 받고 그길로 바로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새벽녘 응급 시술을 받게 되었다. 시술을 마친 후 깨어나 보니 중환자실이었다. 내 가슴과 팔다리에 뭔가 알 수 없는 줄들이 잔뜩 붙어 있었고, 머리맡에는 그래프가 파동치는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맞은편 병실이 빤히 보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코에 호스를 끼고 입은 반쯤 벌린 채 가는 신음소리를 간간이 내보내고 있었다. 옆 병실의 아저씨는 계속되는 신음과 고통 소리를 밤새 내뱉고 숨 가쁘게 호흡을 해대고 있었다.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살아가는 게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텐데 죽음이 왜 사람들에게서는 두려운 것이 되었을까?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죽음 뒤의 세계는 무엇이며 죽음의 세계에 다시 태어난 나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는 볼 수 있는 걸까?

 

일상에 복귀하였다. 최소한 외면적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가슴 저림과 숨이 막혀오는 통증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밤이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잠을 이룰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생겨났다. ‘이러다 극단적으로 내가 죽음을 맞이하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없는 모든 것에 무슨 미련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이 쌓이다 보니 나에게 합당하지 않거나 내 생각에 반하는 모든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평상시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인데도 하나하나 거슬리기 시작하자 괜한 신경질로 막말을 하게 되고 폭력적인 언어로 주변을 힘들게 하였다. 돌이켜보면 미안하지만, 거침없이 쏟아 내는 나의 분노로 인하여 가장 상처를 받았을 사람은 당연 가족이요, 그중에서도 집사람이었다. 막막한 곳에서 아무에게도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그 아픔과 숨 막힐 것 같았던 고통의 나날을 떠올리면 또다시 온몸이 발끝부터 저려오면서 그때의 공포가 밀려오곤 하였다.

 

다시 성경책을 조용히 펼쳤다. 괴롭고 힘들 때면 틈나는 대로 필사를 하였다. 필사한 지 1년이 더 지나갈 즈음 몸도 마음도 차츰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정신적 고통도 잊혀질 무렵 차츰 성경 필사를 게을리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심지어 보름이 지나도 한 글자의 말씀도 옮겨 적지 못 할 때가 허다하였다. 성경이 조용히 먼지에 묻혀 갈 즈음 어느 날 성경에 꽂아둔 성경을 읽기 전에 드리는 기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성경 안에서

우리를 친절히 만나주시는 아버지,

넘치는 성령의 빛으로

제 눈을 열어주시어

당신의 빛을 보게 하시고,

제 귀를 열어주시어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시며,

제 마음을 열어주시어

당신의 생명을 받아 안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말씀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높고 깊은지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감동으로,

저의 모든 일상생활 가운데

새로운 기쁨과 당신의 능력이

빛나게 하여 주시며,

저의 모든 형제들과 함께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게 해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주님께서는 어려울 때 내게 도움을 주시어 일상 속에서 기쁨을 느끼게 해 주셨다. , 내 아픔과 고통을 나름대로 성경 필사를 통하여 이겨내고 일상의 기쁨을 되찾았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되고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다 보니 처음과 달리 성경 필사를 게을리하게 되었다. 이에 마치 성경 필사하는 것이 어려울 때 구원을 요청하는 도구로밖에 안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금 성경책의 먼지를 말끔히 털어내고 거의 매일, 시간을 내서 필사를 하며 나에게 전해오는 주님의 영광과 기쁨을 집사람은 물론 주위의 모든 형제들과 나누며 원숙한 일상을 영위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4518, 3년여간의 기나긴 시간에 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묵시 22, 21)라는 묵시록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성경 필사를 마쳤다.

 

북받쳐 오르는 기쁜 마음과 벅찬 감격을 주님께 바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울산대리구 “사랑의 헌혈 천사 릴레이” 참가 명단(601~) 울산대리구청. 2021.12.31 48
공지 울산대리구 “사랑의 헌혈 천사 릴레이” 참가 명단(301~600) 울산대리구청. 2021.08.04 136
공지 울산대리구 “사랑의 헌혈 천사 릴레이” 참가 명단(1~300) 울산대리구청. 2021.08.04 138
공지 울산대리구<연말 방역 강화에 따른 대리구 지침>에 따른 지침 울산대리구청. 2021.07.14 5495
공지 빛소금 의료지원 운동 후원 현황 안내 울산대리구청. 2020.11.19 143
184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 용서 언양성야고보성당 김인옥 모니카 울산대리구청. 2021.12.08 73
»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우수상 - 말씀을 옮기다 방어진성당 김영근 요한보스코 울산대리구청. 2021.12.08 43
182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장려상 - 용기를 내어라 삼산성당 박 마리아(가명) 울산대리구청. 2021.12.08 39
181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입선작 - 영적 생명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 성숙합니다. 삼산성당 박정수 알로이시아 울산대리구청. 2021.12.08 35
180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입선작 - 신앙의 사춘기를 보내며 무거성당 김광수 미카엘(가명) 울산대리구청. 2021.12.08 27
179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입선작 - 신앙열차에 오르다 야음성당 우진숙 수산나 울산대리구청. 2021.12.08 15
178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입선작 - 불교 집안에 시집와서 살아 온 이야기 호계성당 이애자 골롬바 울산대리구청. 2021.12.08 6
177 울산대리구 '신앙과 말씀의 해' 신앙수기 공모전 입선작 - 당신 말씀은 제 발의 등불이요, 저의 길에 빛입니다. 무거성당 김분향 요안나 울산대리구청. 2021.12.08 5
176 울산대리구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 1단계에 따른 지침 file 울산대리구청. 2021.07.01 726
175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에 따른 대리구 지침 file 울산대리구청. 2021.06.07 459
174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른 대리구 지침 file 가톨릭부산 2021.04.13 265
173 울산 제21-002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2주 연장에 따른 대리구 지침) file 울산대리구청. 2021.01.18 346
172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대리구 지침은 1월 17일까지 연장됩니다. 울산대리구청. 2021.01.07 160
171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에 따른 울산대리구 지침 울산대리구청. 2020.12.31 129
170 울산병영 순교성지 후원 현황과 소식 안내 울산병영순교성지성당 2020.11.19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