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공을 믿으며

가톨릭부산 2021.11.10 10:19 조회 수 : 19

호수 2677호 2021. 11. 14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통공을 믿으며

 
탁은수 베드로 / 광안성당 · 언론인
fogtak@naver.com

 
   상가를 방문하면 대체로 상주들께 슬픔을 잘 이겨내라는 위로를 건넵니다. 고인에 대한 관심보다 산 사람을 위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아버님을 여읜 친구의 말을 듣고 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 계실 땐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도 못 썼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리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 아버님이 생전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누군가의 마음속에 산다는 것, 죽음으로도 헤어지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보내는 위령 성월이 남의 일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도신경에 나오는 ‘통공’이란 말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땅의 신자들과 연옥, 천국의 영혼이 모두 주님 안에 공동체를 이루고 기도와 선행을 주고받는 친교라고 이해했습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죽은 영혼들과의 교류를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내게 죽음은 알 수도 없고 가능하면 멀리 하고 싶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진실이 있을까요? 문밖이 저승이라는 옛말처럼 죽음은 늘 가까이 있고 하루를 산다는 건 그만큼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으니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연옥 예약자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연옥 영혼은 앞서간 인생 선배들이요,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입니다. 연옥 영혼은 스스로 보속할 수 없고 산 자들의 기도와 선행으로만 하느님 나라에 오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화의 고통을 받고 있는 연옥 영혼들보다 우리의 기도가 더 가치 있고 절실한 곳이 있을까요? 그래서 위령 성월은 이승과 저승이 모두 주님 안에 공동체임을 믿고 산 자들의 기도로 죽은 자들의 구원을 돕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특히 올해는 11월 한 달 내내 전대사를 받을 수 있으니 이 또한 큰 은총입니다.
 
   어른이 된 딸들은 냉담 중입니다. 바쁘고 치열한 경쟁에 내던져진 딸들에게 지금 당장 성당을 다니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 품에 돌아오길 기대하며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아빠, 엄마 죽으면 매년 위령 성월과 기일에 미사 드리기” 입니다. 약속을 받고 나니 세상 어떤 연금이나 보험을 든 것보다 든든합니다. 내 영혼이 연옥을 지나 하느님 품에 이르면 영원히 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 약속을 간절히 믿으며 나도 연옥 영혼들이 깊은 구렁에서 외치는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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