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생명을 준다

가톨릭부산 2021.08.18 10:49 조회 수 : 22

호수 2665호 2021.08.22 
글쓴이 원정학 신부 

영은 생명을 준다
 

원정학 신부 / 명지성당 주임




   군중들은 처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에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그 빵을 저희에게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빵이 ‘예수님 당신 자신의 몸’이며 자신을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에 몹시 당황해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는 어떤 빵의 형태를 보여주며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말하며, 내 말을 잘 따르면 이 빵을 주겠다고 했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믿지 않았을까요? 그냥은 안 믿었을지 몰라도 여러 기이한 기적을 보여주며 ‘내 말이 맞다’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믿고 그 빵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군중은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일으키신 것을 보고 찾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통한 ‘영원한 생명’의 빵은 사람들에게 착각을 불러올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군중들은 이 빵을 얻기 위해 세속적인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율법주의가 하느님과의 계약을 세속적인 방식(무언가 획득하기 위한 형식)으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는지 그 계약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셨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들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얻는 획득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하느님의 일) (요한 6,29 참조) 따르는 삶을 통해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은총의 선물에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으며 외아들을 통해 그 사랑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영’이 아니라 육에 갇혀 예수님의 말씀을 세속적으로 이해하려는 군중은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몸을 먹고 마시라는 말씀은 이들에게 거북할 뿐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이런 딜레마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의 눈과 귀는 세속적 입장에서 보고, 듣는 데 익숙하기에 자칫 조금이라도 그런 견지에 빠진다면 참된 진리의 말씀은 의혹으로 바뀌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당장 눈앞에 어떤 표징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으로 볼 수 있는 표징을 어떻게 ‘육’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ㄷ)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세속적인 안목이 아니라 ‘영’을 통해 봄으로써 참된 진리의 표징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73호 2025. 6. 8  보호자시여, 저희의 닫힌 문을 열어주소서! file 권동국 신부 
2872호 2025. 6. 1.  승천하신 예수님, 저희도 하늘로 올려 주소서 file 이상일 신부 
2871호 2025. 5. 25.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file 맹진학 신부 
2870호 2025. 5. 18.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file 권동성 신부 
2869호 2025. 5. 11.  내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신 하느님! file 박규환 신부 
2868호 2025. 5. 4.  치유, 회복 그리고 부활 file 김영환 신부 
2867호 2025. 4. 27.  토마스 사도 덕분에 file 이창신 신부 
2866호 2025. 4. 20.  부활은 희망입니다 file 손삼석 주교 
2865호 2025. 4. 13.  행한 것이 남는다. file 장용진 신부 
2864호 2025. 4. 6.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file 김태환 신부 
2863호 2025. 3. 30.  감옥에 갇힌 이들 file 송현 신부 
2862호 2025. 3. 23.  무화과나무 한 그루와 나 file 한윤식 신부 
2861호 2025. 3. 16.  산 아래로 다시 내려와서 file 강지원 신부 
2860호 2025. 3. 9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file 장민호 신부 
2859호 2025. 3. 2  다 배우고 나면 내 눈 안에 들보가 있음을 알게 될까요? file 김동환 마티아 신부 
2858호 2025. 2. 23  ‘뭐, 인지상정 아니겠나...’ file 오종섭 신부 
2857호 2025. 2. 16  행복은 상대적이지 않다. file 원정학 신부 
2856호 2025. 2. 9.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치겠습니다.” file 신기현 신부 
2855호 2025. 2. 2  참된 봉헌은 자기비움 입니다. file 장훈철 신부 
2854호 2025. 1. 29  깨어 있음 박근범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