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
정명지 아녜스 / 북양산성당 · 시인 sotoajimae@daum.net
우리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천 리는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최첨단 기기가 보편화된 정보화 시대를 사는 요즘은 몇십만 리를 돌아다닌다. SNS가 발달하여 지구 반대쪽에 사는 친구에게 보낸 문자의 답장이 단 몇 초 만에 되돌아오는 세상이니 하나의 문장이 전달되는 속도와 그 파급 효과는 지구를 몇 바퀴 돌고도 남음이 있다.
몇 해 전, 어느 수녀님의 선종 소식이 카톡을 타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수녀님은 너무나 건재하셨다. 이후에도 몇 차례 오보가 쏟아졌지만 도대체 헛소문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종이라는 말속에는 망자의 전 생애가 담겨 있다. 단순히 ‘선종하셨다더라’, ‘아님 말고’라는 식의 간단한 말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수녀님의 선종 소식은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사실은 내게도 그와 유사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청년 시절, 본당 복사단 레지오 단장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주일 새벽미사를 다녀오신 엄마가 ‘수산나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앞에 계시던 신부님께서 선종하셨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성당에 도착해서 사무장님께 물었더니, 지금 계신 본당의 전화가 계속 통화 중인 걸로 봐서 아무래도 선종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복사단 아이들과 함께 신부님을 위해 기도를 했다.
이럴 수가! 레지오 후에 신부님께서 무사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히 복사단 아이들을 찾아서 정정했지만 이미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했고, 발 없는 말이 얼마나 재빠른지,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결국은 당사자인 신부님의 귀에도 들어갔다는 웃지 못할 비화가 생겨나고 말았다. 사실확인 없이 내 입에서 튀어 나간 말이 저지른 사고였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뒤 주보에서 신부님의 진짜 선종 소식을 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선종 날짜가 내 아들의 생일과 겹치는 것이 아닌가. 해마다 아들 생미사를 드리면서 신부님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래전의 실수에 대해 속죄하듯 내 기도 목록에 신부님을 올리곤 한다.
가끔 문자로 전달되는 사제와 수도자들의 선종 소식은 해당 교구나 수도원의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 문자를 받으면 바로 전달하기보다 반드시 확인 후 전달했으면 좋겠다. 위독하신 분께 꼭 필요한 기도를 드려야 할 때 살아있는 망자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건 좀 곤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