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후라이 하나의 행복

가톨릭부산 2021.07.21 10:32 조회 수 : 19

호수 2661호 2021.07.25 
글쓴이 박선정 헬레나 
달걀 후라이 하나의 행복

 
박선정 헬레나 /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whitenoise99@hanmail.net


 
   어릴 적 시골에서는 대부분 가정에서 닭을 키웠다. 소위 알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집에서 낳은 그 알조차도 먹을 수 없는 집이 많았는데 우리 집도 그중 하나였다. 그 알을 모아서 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드는 데 쓰다 보니 집에서는 좀처럼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암탉이 숨겨놓은 따뜻한 알을 찾는 일은 막내인 내 몫이었다. 애미의 본능으로 암탉은 교묘하게 자신의 알을 숨겼고 어린 나는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구석구석에서 알을 찾아냈다. ‘오늘은 내 도시락에 후라이 하나 넣어주려나.’하면서. 그러나, 기대는 늘 실망이었다. 오빠와 언니까지 각각 하나씩 주다 보면 언제 한 광주리 모아서 돈을 만들겠나. 그러니 제삿날이나 소풍날을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갓 찾은 알 하나를 조심스레 두 손에 받쳐 들고 정제로 들어가다가 그만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무르팍 깨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손에 들고 있던 귀한 달걀 하나가 그만 바닥에서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아이고!” 할매는 손녀 다친 건 안중에도 없이 아까운 달걀 하나가 흙바닥에서 버려질 요량인 것만 아쉬워서 혀를 찼다. 다행히 바닥 위 달걀노른자는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할매는 숟가락을 꺼내 들고 그 노른자를 가능한 한 터뜨리지 않게 조심조심 걷어냈다. 흙이 좀 묻었지만 괜찮다. 그리고, 그 깨진 달걀은 후라이가 되어 그날 내 벤또 밥 위에 고이 얹혔다. 그러니, 그날 보따리 가방 허리춤에 둘러메고 학교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어땠겠나. “느거 아나? 나도 오늘 벤또 안에 달걀 후라이 들었다 아이가!”
 
   이제 우리는 먹을 것도 사는 것도 많이 넉넉해진 세상에서 산다. 그러다보니 달걀 후라이 하나에 ‘행복’같은 걸 느낄 일도 없다. 이전에는 작은 것 하나에도 마냥 행복해했는데, 이제는 더 크고 더 많은 걸 가져도 그다지 행복한 줄 모르고 산다. 그러고 보니,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보물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보물을 늘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저녁에는 흙이 묻지 않은 깨끗한 달걀 후라이 두 개를 먹으려 한다. 명절도 제삿날도 소풍날도 아닌데, 달걀 후라이를 두 개씩이나 먹을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실감하면서 말이다.
호수 제목 글쓴이
2677호 2021. 11. 14  통공을 믿으며 탁은수 베드로 
2676호 2021. 11. 7  “당신이 천주교인이오?”(1846년 8월 26일 김대건 신부님 옥중 서한 中) 최재석 사도요한 
2675호 2021. 10. 31  아! 옛날이여! 장혜영 루피나 
2674호 2021. 10. 24  아궁이 불을 지피며 박선정 헬레나 
2673호 2021.10.17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여 한영해 아가다 
2672호 2021.10.10  최재선 사도요한 주교님과 묵주 기도 정효모 베드로 
2671호 2021.10.03  저희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최연수 신부 
2670호 2021.09.26  가톨릭 사회교리와 난민 김검회 엘리사벳 
2669호 2021.09.19  장기 숙성 와인처럼 윤경일 아오스딩 
2668호 2021.09.12  가톨릭 성지회와 목욕봉사단 file 서남철 대건안드레아 
2667호 2021.09.05  천국으로 가는 길 박성미 아가다 
2666호 2021.08.29  주님의 도구 김추자 율리아 
2665호 2021.08.22  힘내라! 선한 영향력 탁은수 베드로 
2664호 2021.08.15  하느님, 우리 축복해주세요! 김진수 신부 
2663호 2021.08.08  발 없는 말 정명지 아녜스 
2662호 2021.08.01  아무것도 너를 김지연 안젤라 
2661호 2021.07.25  달걀 후라이 하나의 행복 박선정 헬레나 
2660호 2021.07.18  “생태적 회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file 오창석 신부 
2659호 2021.07.11  바다의 별 file 박준철 스테파노 
2658호 2021.07.04  어머니의 믿음 윤미순 데레사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