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59호 2015.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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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갑조 신부 |
성모 마리아는 순례의 길을 걸으시고
박갑조 세례자 요한 신부 / 맑은하늘피정의 집 관장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엘리사벳과 그녀의 태중에 있는 요한처럼 예수님을 뵌 적은 없지만, 희미하게나마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마음은 설렙니다. 이런 설렘이 생기기 시작하는 대림절은 과연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가장 나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오늘 복음 속의 만남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루카 1, 36 참조)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에 성모님은 말씀의 내용을 머리로 알아듣는데 그치지 않고, 그 깊은 뜻이 담긴 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39절) 우리들은 자신이 생겨나온 데가 어딘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의지대로만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천사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자기다운 길입니다. 이것이 성모님이 걷는 순례의 길입니다.
우리들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같이 걸어가고픈 사람들과의 만남에만 집착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헤어지기에 혼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걷는 순례의 길은 홀로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갖추지 아니한 것이 없는 분과 함께 걷는 영원한 동행의 길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과 세월의 풍상을 겪은 엘리사벳 두 분의 만남 안에서 영원한 동행의 길이 더욱 드러납니다. 마음고생이 많았던 두 사람의 만남은 각자 안에 처음부터 계셨던 하느님을 함께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신앙인의 모든 만남의 원형이 됩니다.
참다운 순례의 길을 걷는 이의 마음에는 만나는 모든 인연과 일에 대해 무심히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나하나를 하느님의 일로 여기고 받들며 그렇게 실천합니다. 그렇기에 성모님의 발걸음은 비록 요한을 잉태하고 있지만 엘리사벳에게 아직 남아 있는 과거의 치욕스런 기억을(25절) 온전히 정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순례의 걸음이 머문 만남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성모님의 모습에서, 엘리사벳은 같은 마음으로 이를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그리고 하느님의 일로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노래하게 됩니다.(43~44절 참조) 구세주를 모신 성모님의 길이 모든 인류의 길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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