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650호 2021.05.09 
글쓴이 노옥분 글라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사도 10,34ㄴ)

 
노옥분 글라라 / 사하성당, 시인·수필가 gll1998@hanmail.net

 
   주어진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은 매여 있다거나, 한정된 장소, 정해진 운명, 일상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창조의 숨을 간직한 채 산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생명체들은 세상이 모르는 사이 땅과 물을 건강하게 만든다. 조그만 생명체들이 제 숨을 쉬지 않게 된다면 땅도 물도 이내 썩게 된다. 그러고 보면, 지구상에서 ‘제 숨’을 쉬지 않고 사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는 듯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 범죄가 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애틀랜타 지역에서 아시아계가 운영하던 마사지 업소에 총격을 가해 8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 8명 중 6명은 아시아계 여성, 이 중 4명은 한국계 여성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시아계 혐오 범죄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SNS에서도 ‘#stopasianhate’(아시안 혐오를 멈춰라)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인종차별은 상대방과 나의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외형적으로 다르거나 출신 국가가 다르다고 상대를 차별한다면, 이는 제 숨을 더 잘 쉬려고 남의 숨마저 빼앗아 쉬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이웃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정작 제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약 귀를 막고 듣지 않으신다면 이 시대가 부르짖는 소리(기도)들은 공기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뭇 인생 한가운데로, 역사 속 한복판으로, 말없이 걸어가시는 그분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걸음걸음 고뇌에 찬 고운 숨소리가 들린다. 인간이 만든 문명을 향해 자연이 탄식하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준엄한 역사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예시와 묵시의 소리에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귀를 닫는 것은 마음을 닫는 것이고, 들리지 않는 것은 듣지 않으려는 무관심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나무에게 물었다. “하느님에 대해 말해 주겠니?”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다. 하지만,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은 아니다. 다함께 피어나야 봄이다. 대지 전체에 생명이 돋고 세상 전부가 피어나야 봄이 온 것이리라. 자연과 세상과 역사와 이웃이 하나 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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