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647호 2021.04.18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아낌없이 주는 사랑

 
탁은수 베드로 / 광안성당 · 언론인 fogtak@naver.com


 
   1년 전 이즈음을 기억하십니까?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던 그때 말입니다. 마스크 대란이 계속 되자 정부는 주민번호 끝자리에 따른 특정 요일에 마스크 두 장씩만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그때 마스크는 코로나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이자 생명의 방패였습니다. 의료진이나 취약계층을 위해 마스크를 양보하는 미담도 있었지만 마스크 새치기, 주민번호 도용 같은 씁쓸한 일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1년 만에 마스크는 흔해졌고 코로나 종식의 희망이 될 백신까지 접종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하느님께서 주신 그 좋은 머리로 단기간에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주신 착한 마음으로 백신을 나누는 일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입니다. 돈 있는 특정 국가들이 백신을 사재기하면서 백신의 쏠림 현상, 백신 불평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국민이 몇 번이나 맞고도 남을 백신을 보유한 국가가 여럿입니다. 지금까지 접종자의 80%는 10여개 강대국에 집중돼 있습니다.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는 언제 백신을 구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입니다. 생명의 가치가 돈과 힘에 좌우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 종식을 위한 집단 면역력 확보는 특정 지역, 특정 국가가 아니라 인류의 70%가 골고루 접종해야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강대국 모임인 G20의 정상들도 말로는 백신이 공공재임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남이야 어찌 됐든 나부터 살기 위해 남의 것을 가로채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걸 자국민 보호라고 당연시하는 걸 보면 교만과 욕심이라는 원죄의 뿌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부활 메시지를 통해 백신의 보편적 접근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백신 나눔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미 성체성사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나눠주고 계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나눠 받은 우리들입니다. 인류를 위한 거대한 십자가를 당장 지라는 것도 아니고 백신 나눔을 위한 정성을 모으는 정도라면 나 같은 불량 신자도 동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한국 천주교회는 한마음한몸운동 같은 생명과 사랑 나눔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쯤 되니 “모두의 밥이 되고 싶다.”하셨던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립습니다. 마지막 남은 각막까지 아낌없이 나눠주고 가신 지가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랑은 남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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