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닙니다.

가톨릭부산 2021.02.10 10:22 조회 수 : 17

호수 2638호 2021.02.14 
글쓴이 정우학 신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닙니다.

 
정우학 신부 / 이주노동자사목 free6403@hanmail.net 

 
   유난히 추운 겨울입니다. 제가 일하는 노동사목 건물에도 수도가 꽁꽁 얼어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따뜻한 집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따뜻한 집에서 하루의 추위와 피로를 녹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가 차가운 비닐하우스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비닐하우스’는 이주노동자에게 주어진 숙소였습니다. 심지어 난방조차 고장 나 있었습니다. 비단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숙소가 비슷한 상태입니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가건물, 수도와 난방이 원활하지 않고 곰팡이가 피어있는 숙소로 이주노동자들은 내몰려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는 추위와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집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사건은 예견되었습니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가건물 등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이주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은 수년 전부터 있어왔으나,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우려를 무시하고 이주노동자 기숙사에 대한 점검과 기준 강화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 살면서도 꼬박꼬박 회사에 기숙사비를 내도록 법을 만든 것은 물론이며 지금의 고용노동법은 이주노동자들이 이에 대한 불평도 이직도 할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참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참상을 통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했던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ㄷ) 어쩌면 우리 주위에도 아기 예수님께서 당신이 머물 곳을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추위와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서 갈 곳 없어 방황했던 마구간의 아기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집으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냉대했던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이 위로받고 쉴 수 있는 그러한 집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우리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예수님의 몸을 제 안에 모시면서 그러한 사명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받아들일 여유와 너그러움을 갖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 살게 되는’ 살맛 나는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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