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삶

가톨릭부산 2021.02.03 11:21 조회 수 : 13

호수 2637호 2021.02.07 
글쓴이 윤경일 아오스딩 
공존의 삶

 
윤경일 아오스딩 / 좌동성당, 의료인 ykikhk@hanmail.net

 
   꽃과 벌과 나비의 관계를 관찰해 봅니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여기저기 옮겨 수정을 일으킵니다. 그 대가로 벌과 나비는 꿀을 얻지만 서로는 상처를 남기지 않습니다. 다른 계통의 생물들이 공생 관계를 이루는 것을 보면 자연은 경이롭습니다. 
 
   인간도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곤경에 처한 어려운 이를 만나면 도우려고 애를 씁니다.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서 문명의 발전을 거듭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운명공동체적 삶을 지탱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질주의 문명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황금만능주의가 세상을 극단적인 분열 상태로 치닫게 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시켜 인간의 공존 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낳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독거노인들께 일정 기간 식품 지원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의 화려한 틈 사이로 창문조차 없어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는 비좁은 방에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습기 찬 방과 곰팡이로 얼룩진 벽은 고령의 육신을 더욱 병들게 했습니다. 명절이 되어도 아무도 왕래하지 않는 단절된 삶의 모습은 목숨만 겨우 붙어 있을 뿐 죽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꽃이 열매를 맺으려면 벌과 나비가 수정을 시켜주어야 가능하듯 인간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온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빵집에 손님이 빵을 사러 오지 않으면 주인의 수입은 어디서 생기겠습니까? 병원에 환자가 오지 않으면 의사의 수입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누구나 취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협력하고 의존해야 합니다. 나눔을 통한 공생의 삶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만나지 못하면서 예전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습니다. 공존은 단순히 문제없이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형제적인 관계에 기반한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공존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건네는 위로의 한마디, 따뜻한 사랑의 몸짓, 궁핍한 이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는 행위가 일어날 때 참다운 공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이기심을 버리고 꽃과 벌과 나비의 관계를 이룬다면 세상은 평화의 분위기가 넘칠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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