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

가톨릭부산 2020.10.28 11:58 조회 수 : 17

호수 2621호 2020.11.01 
글쓴이 김형옥 소화데레사 수녀 
또 다른 시작!!

 
김형옥 소화데레사 수녀 / 하늘공원,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예기치 못한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연하게 여겨오던 일들을 멈추고, 돌아보며, 삶의 태도를 바꾸어 새로운 길로 나아가도록 초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오랜 시간 마음을 쏟으며 함께했던 공동체를 떠나야 했고, 이 시대의 요구에 기꺼이 응답하려는 수도회의 영성에 따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양산 하늘공원’에서의 새로운 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과 눈물을 위로하며 함께 기도하고, 마지막을 동반해주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나에게 무덤은 가까이 가기 두려운 곳이었고, 돌아가더라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이런 나에게 하늘공원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초대이기도 했다.
 
   무덤 앞에 서면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 겸손해지고, 허락된 삶의 시간을 더 충실히 살아가게 한다. 산 이와 죽은 이가 공존하는 곳, 그래서 하늘공원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아직도 다 못한 말을 가슴에 담고 매일 찾아오는 발길 속에 묻어나는 사랑, 정성스레 초에 불을 밝히고, 손을 모으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며, 함께하는 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을 손편지에 고이 적어 전하는 고마움과 미안함, 결혼 청첩장과 입학, 취업 등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역동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출근 첫날 신부님께서 하늘공원을 소개해 주시면서 우리는 교우들은 많은데 말이 없으신 분들이라 아주 조용하다고 농담으로 말씀하시면서 멈추어야만 보이고, 들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셨다. 여백을 읽고, 사랑을 기억하는 곳, 바로 성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지금 하늘공원에도 가을이 익어간다. 잔디들 위로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 야생화들이 함께 어우러진 곳, 나는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 들고 이 공원으로 소풍을 나간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동기 수녀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오늘도 묵주를 손에 쥐고 무덤을 돌면서 영혼들을 기억하며, 모든 성인의 통공과 영원한 삶을 믿으며 매일 새로이 봉헌한다.
호수 제목 글쓴이
2626호 2020.12.06  어느 청년노동자의 꿈 이영훈 신부 
2624호 2020.11.22  [이콘 읽기] 대사제이시며 왕이신 그리스도 file 이인숙 안젤라 
2623호 2020.11.15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가난 윤경일 아오스딩 
2622호 2020.11.08  내 마음의 평화 현주 라파엘라 
2621호 2020.11.01  또 다른 시작!! 김형옥 소화데레사 수녀 
2619호 2020.10.18  “그 어느 때 보다 외롭다.” 탁은수 베드로 
2618호 2020.10.11  깨끗한 마음 김원용 베드로 
2617호 2020.10.04  [이콘 읽기] 묵주 기도의 성모님 file 이인숙 안젤라 
2615호 2020.09.20  [이콘 읽기]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 27,1) file 이인숙 안젤라 
2614호 2020.09.13  선물같은 일상 김도아 프란치스카 
2613호 2020.09.06  40년 묵은 도시락 박선정 헬레나 
2611호 2020.08.23  아름다운 공동의 집 이정숙 에스텔 
2610호 2020.08.16  [이콘 읽기] 성모 승천 file 이인숙 안젤라 
2609호 2020.08.09  하느님의 바람 최고은 소피아 
2608호 2020.08.02  좋은 본보기 윤경일 아오스딩 
2606호 2020.07.19  한 끼의 힘 현주 라파엘라 
2605호 2020.07.12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 성지민 그라시아 
2604호 2020.07.05  바람이 불어오는 곳 탁은수 베드로 
2602호 2020.06.21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다 민훈기 가브리엘 
2601호 2020.06.14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정영옥 크리스티나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