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2020.10.5.11:00, 병영성지성당)
오늘 복음에서 율법교사는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예수님께 시질문을 던집니다. 영원한 생명은 율법교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원하는 율법교사에게 가장 기본적인 방법, 구약의 율법의 정신, 근본, 핵심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신명기 6장 5절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레위기 19장 18절의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을 모세율법의 근본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 두 사랑의 계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요한1서 4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사도가 갈라티아서에서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하신 계명입니다.”
이어서 율법교사가 다시 예수님께 묻습니다.“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둘이 아닌 하나라면, 그래서 이웃을 사랑이 그렇게 중요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율법교사는 당연히 이웃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이웃이란 당시 유대인의 생각처럼, 같은 땅에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며, 그의 친척과 이웃 친구로 한정된 이웃입니다. 결코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나 같은 동족이라도 죄인들은 이웃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웃의 개념을 확 바꾸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이란 같은 동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심지어 우리의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원수까지 해당되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행동한 것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 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말씀처럼 이렇게 이웃개념을 확대한다면 우리는 과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정말 온 세상이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지금, 오늘 예수님의 이웃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이 됩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감염을 방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나 자신 생명과 안전만이 아닌 타인,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방역지침에 협조하고 솔선하는 것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함께 도우고 격려해주는 것이 이웃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