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616호 2020.09.27 
글쓴이 이장환 신부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이장환 신부 / 선교사목국장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이릅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큰아들은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라고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묻습니다. 그들은 ‘큰아들’이라고 대답합니다.

   처음엔 싫다고 한 큰아들보다 아버지의 뜻을 처음부터 따르고 실천까지 잘하는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당연히 자신들의 것이라 여겼으나 세례자 요한의 말도 따르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도 듣기를 거부하는 그들은 ‘작은아들’이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죄인이었으나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했던 ‘세리와 창녀들’이 ‘큰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아들일까요, 작은아들일까요? 보좌신부 시절 함께 계시던 수녀님이 저에게 ‘착한 목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별명이 마음에 들었던 저는 그에 걸맞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자들이 무언가를 부탁하면 즉시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시작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 형평성에 맞는 일인가? 너무 몰캉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등 대부분은 안 할 핑계를 찾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냥 기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저는 그 당시의 사제들과 원로들처럼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작은아들’이 될 가능성을 늘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편 신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당신부가 신자들에게 뭔 일을 시키면 하기 싫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일을 맡게 되고 맡은 일은 열심히 합니다. 마음이 약해서인지 신앙심이 깊어서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큰아들’이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두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큰아들에게서는 속상함에서 안도의 기쁨으로, 작은아들에게서는 든든함에서 서운함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버지가 가지셨을 속상함과 서운함은 빼고, 든든함과 기쁨만을 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적어도 ‘큰아들’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우리 안에 간직하고 살아갈 때, “예. 제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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