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바람

가톨릭부산 2020.08.05 09:58 조회 수 : 21

호수 2609호 2020.08.09 
글쓴이 최고은 소피아 
하느님의 바람

 
최고은 소피아 / 하늘공원

 
   “어서오십시오!”
   안치 행렬을 맞으며 잠시 주춤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된 제가 맞이한 고인 중 가장 젊은 얼굴을 사진을 통해 만났습니다.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남은 유골함을 건네받으며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유가족분들은 망연자실해 있고 고인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안치 예식 내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그 어떤 행위도 혹여나 마음을 더 아프게 할까 염려되는 순간들.. 고인의 친구들이 오랫동안 유골함의 온기를 느끼고 서 있는 모습에서 저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뒤로 늘 고인의 어머니는 자제분을 위해 피에타상 앞에 초를 밝히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셨습니다. 미사 중 봉헌된 고인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서 오세요, ○○○ 어머니!” 사무실에 들르실 때마다 어둡던 어머니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지고 환해짐을 체감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채색 옷에서 웃으시는 얼굴만큼 활짝 핀 꽃 셔츠로 바꿔 입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새 희망으로 삶을 꾸려가고 계셨습니다. 
 
   하늘공원에 오셔서 매일 미사를 드리고, 돌아가신 자매님을 위해 오카리나를 연주하며 사랑의 기억을 더듬으시는 한 형제님을 뵙습니다. 또 자제분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슬픔을 딛고, 몇 년째 전례 봉사로 더 큰 사랑을 드러내는 ‘한우리회’ 형제자매님들을 매주 토요일마다 만납니다.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아 눈물이 앞을 가려도 어느새 보면 하늘공원에 기도하러 와 있다는 한 형제님의 고백도 듣습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미사와 기도, 봉사 안에서 슬픔과 아픔을 온전히 하느님께 드리면, 그분께서는 그 마음을 친히 어루만져 주시고 새 희망으로 살아갈 힘을 주시는구나 하고 매번 새롭게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듯 하늘공원은 돌아가신 분들과 살아있는 이들을 만나게 해주는 희망의 공간입니다.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하면서 산 이가 보다 더 희망을 찾게 되는 이곳에서 저도 슬픔과 아픔으로 내몰리지 않는, 희망을 길어 올리는 감사의 새 삶을 살아가자 다짐하게 됩니다. 오늘 순간순간을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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