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과 감사의 기도

가톨릭부산 2020.07.29 09:35 조회 수 : 49

호수 2608호 2020.08.02 
글쓴이 이수락 신부 

부족함과 감사의 기도
 

이수락 신부 / 장림성당 주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빵과 물고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게 하시기 전에, 그것을 손에 들고 찬미를 드리십니다.

   한쪽에는 오천여 명의 배고픈 군중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이 완전한 불균형의 관계 사이에 예수님과 그분의 감사 기도가 자리를 잡습니다. 어쨌든 감사 기도가 이루어진 다음에 그 불균형은 정반대의 불균형으로 뒤바뀝니다. 오천여 명과 빵 다섯 개. 빵 다섯 개 쪽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이제 오천여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습니다. 이것은 아직도 아무리 더 많은 사람이 온다 하여도,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저울의 추가 한쪽으로 완전히 쏠렸다가, 갑자기 반대쪽으로 완전히 기우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배고픈 오천여 명과 빵 다섯 개, 그리고 예수님의 감사기도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우선 부정적인 대답을 하나 더 한다면, 이 감사기도 자체가 어떠한 힘을 지녀서 빵을 많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군중을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배고픈 군중의 이름으로 찬미를 드리셨습니다. 언뜻 들을 때에 이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빵 다섯 개로는 굶주린 오천여 명의 배를 채우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기 때문에, 기도를 드리려면 청하는 기도를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청원기도가 아니라,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비논리라 하겠습니다. 아니면,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논리를 초월하는 논리라 하겠습니다.

   부족함은 인간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을 채워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워도 꽉 차지 않습니다. 항상 모자랍니다. 오히려 점점 더 모자란 듯이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원래 충만, 잉여, 과잉이라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충만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지만 충만은 오히려 더 멀리 보입니다. 이 충만을 모르는 마음에서 불행과 불만이 나옵니다. 이 만족을 모르는 마음에서 갈등과 불화, 그리고 전쟁까지 일어납니다.

   부족함 속에서 충만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자세,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자세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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