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604호 2020.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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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탁은수 베드로 |
바람이 불어오는 곳
탁은수 베드로 / 광안성당·언론인 fogtak@naver.com
아침, 저녁나절의 바람이 한낮의 더위를 식혀 아직은 견딜만한 날들입니다. 여름이 점차 익어 갈수록 한 줄기 바람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느껴지겠지요. 그리고 여느 해처럼 대지가 햇살을 견뎌내면 어느새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겁니다. 바람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그 존재와 변화까지도 우리는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열기나 냉기로, 때론 속삭이고 때론 휘몰아치며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바람. 그런데 처음 이 바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바람을 공기의 움직임으로 설명합니다. 공기뿐 아니라 우주의 모든 것을 입자와 파동으로 분석하는 분야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최첨단 과학에서조차 바람과 햇살과 우주의 시초를 원자의 우연한 부딪힘이나 확률로 설명합니다. 이른바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우연히 그냥 생기는 일이 있을까요? 내게는 인간의 인식 차원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인간의 인식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이 바람의 시원(始原)을 좇아가면 바람뿐 아니라 햇살, 녹음, 생명, 영혼이 시작된 그곳에 닿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곳. 그리고 흙으로 우리를 빚으신 후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하느님의 숨결을 그려봅니다. 바람이 생겨난 곳은 그곳이 아닐까요?
바람의 속성은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의 인생이 흘러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힘든 땀방울을 스쳐 가는 바람은 “이 또한 지나간다.”는 위로의 속삭임 같기도 합니다. 세상의 존재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하느님의 섭리 안에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가벼운 존재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말 ‘바람’은 무엇을 바란다는 희망의 뜻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희망은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바람이 시작된 그곳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부터 와서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고 살다 ‘바람과 함께 사라져’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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