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한우 유해 발굴 경위 및 절차 설명>
오한우 유해 발굴 경위 및 절차 설명
(부산교회사연구소 소장 한건 신부)
오한우는 해주 오씨이며, 호적대장에 의하면 1760년에 태어났습니다. 구전에 의하면 그는 서울을 왕래하며 같은 오씨 문중의 오몽상과 초기 천주교회의 지도층 인물이 권일신, 정약용과 교분을 맺었다고 한다. <천주실의>를 비롯한 교리서 몇 권을 얻어 집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신앙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부친에게 발각되어 책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1790년 3월 경 한양에 가서 세례성사를 받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충청도와 경상도 경계지점에 백지사로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1991년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언양읍 고무재에 있는 묘3구 가운데, 순교자로 전해지는 그의 손자 오상선의 묘를 발굴했는데 치아와 두개골이 나와 언양 성당으로 이장하였습니다. 이후 후손들이 오상선의 할아버지라고 추정되는 오한우의 묘를 발굴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부산교회사연구소에서 울산대리구장 김영규 신부님과 교회사학자 한윤식 신부님, 역사학자 손숙경 선생님 등과 오한우에 대해 여러 사실을 검토하고 나서, 오한우 유해 발굴을 결정하였습니다.
오한우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사실 밖에 없기에,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어떠한 칭호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유해 발굴을 통해 그의 천주교 수용 여부에 대해 확인할 것입니다. 다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사실도 가치가 있기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발굴 예식을 통해 유해 발굴을 할 것입니다. 모두 정성되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예식에 함께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