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과 성당 사이

가톨릭부산 2020.03.04 10:28 조회 수 : 38

호수 2587호 2020.03.08 
글쓴이 김태수 클레멘스 

냉담과 성당 사이
 

김태수 클레멘스 / 사직성당·시인 tsk605@daum.net
 

   누구나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은 법이다. 아내가 오랜 투병 생활로 10여 년이 넘도록 병원 입 퇴원을 반복했다. 투병 생활 중 성당은커녕 모든 일상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처지까지 되고 보니 주변의 염려도 컸었다. 과연 회복되어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할지조차도 불투명했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10여 년의 입원 생활이 마무리되고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차츰 시일이 가면서 거동도 가능해져 주변 사람들은 기적이라고까지 말들 했다. 얼마 전부터는 일상생활이 가능해지고 여행까지 몇 차례 다녀올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미사를 갈 때 가끔 아내의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여행이며 모임에도 갈 정도가 됐는데 답답했다. 병후 심신을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스스로 나가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왜일까? 이럴 땐 심리탐구의 전문가라도 되어 아내의 속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성당에서 미사 때마다 만나는 교우들이 자매님은 왜 오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언제나 아직 몸이 좀 좋지 않아서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늘 마주치는 그런 인사들이 부담스러워 사람들이 많은 교중미사보다는 새벽미사를 선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거의 습관처럼 새벽에 미사를 간다. 자주 이야기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될 것 같고 혼자서 기도 중에 냉담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냉담 교우를 위한 기도를 신청하기도 하고 서두르지 않고 시기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성탄 전야 미사에 성당에 같이 가겠다고 스스로 말해왔다. 놀랍고 반가웠다. 둘이서 촛불을 켜 들고 많은 사람들 틈에 다소곳이 앉아 미사를 드리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본인도 만감이 교차하였으리라. 감사한 일이었다.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다 가신 어머님께 감사드렸다. 장장 15여 년 만의 복귀다. 냉담과 성당 사이가 참으로 멀고도 힘들었다. 이토록 먼 길일 줄은 미처 몰랐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76호 2025. 6. 29  주님 사랑 글 잔치 new 김임순 
2875호 2025. 6. 22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2874호 2025. 6. 15  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2873호 2025. 6. 8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2872호 2025. 6. 1.  P하지 말고, 죄다 R리자 원성현 스테파노 
2871호 2025. 5. 25.  함께하는 기쁨 이원용 신부 
2870호 2025. 5. 18.  사람이 왔다. 김도아 프란치스카 
2869호 2025. 5. 11.  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2868호 2025. 5. 4.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하십시오. 김지혜 빈첸시아 
2865호 2025. 4. 13.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안덕자 베네딕다 
2864호 2025. 4. 6.  최고의 유산 양소영 마리아 
2863호 2025. 3. 30.  무리요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자비의 노래 박시현 가브리엘라 
2862호 2025. 3. 23.  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61호 2025. 3. 16.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2860호 2025. 3.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사순 시기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2859호 2025. 3. 2  ‘나’ & ‘우리 함께 together’ 김민순 마리안나 
2858호 2025. 2. 23.  예수님 깨우기 탁은수 베드로 
2857호 2025. 2. 16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최경련 소화데레사 
2856호 2025. 2. 9.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안경숙 마리엠마 수녀 
2855호 2025. 2. 2  2025년 축성 생활의 날 담화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