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83호 2020.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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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선정 헬레나 |
2019년 마지막 날 한 대 맞은 사건
박선정 헬레나 / 남천성당·인문학당 달리 소장
2019년 마지막 날이었다. 동네 내과에서 수면 내시경을 마치고 아직 몽롱함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걸어서 집으로 향하던 나는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도, 시선을 딴 데 두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분명코 정면 주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몽둥이 같은 것이 내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왔다. 으악! 그러나,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나는 어떤 죄도 지은 것 없이 얌전히 집을 향해 내 길을 걷고만 있었다. 그런 순수하기만 한 나를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동정심도 없이 그 몽둥이가 거침없이 다가온 것이다. 억울하다. 나는 정말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 나를 저 몽둥이가 이유 없이 때린 거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정신을 차리고 상대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너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허걱! 근데 이를 어쩌나. 나를 친 그 상대는 성당 출입구의 자동차 차단기였던 거다. 그러니깐, 차단기는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가서 차단기를 친 거다. 다행히 차단기는 다친 데가 없다. 안 그러면 얌전히 서 있는 차단기를 내가 얼굴로 쳤으니 당연히 전액 보상 판결이 나왔을 터.
한 대 맞고 보니,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기 그 자리에 차단기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쳤다고 철석같이 믿었을 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망각한 채, 나는 늘 주변이 움직인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모른 채 늘 주변이 잘못하고 있다고 믿으며 투덜거리고 살아온 건 아닐까. 친 건 ‘나’인데, ‘니’가 날 친 거라고 빡빡 우기면서 말이다.
이것이 늘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낱낱이 흉보면서, 정작 자신의 모습은 볼 수 없는 우리 인간의 한계인 것일까.
2019년 마지막 날, 성당 바로 앞에서 하느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일격을 가하셨다. ‘내 탓이오’를 잊어버린 작금의 나에게 경종을 울리신 게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 탓이 아니라 내 탓이었습니다! 세상이 어두웠던 게 아니라 내게 빛을 나누는 마음이 없었던 겁니다. 2020년에는 잘 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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