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55호 2015.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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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검회 엘리사벳 |
사람이 먼저입니다
김검회 엘리사벳 / 정의평화위원회 eli70@hanmail.net
“사랑합니다. 고객님!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가면 허리를 깊이 숙이며 환한 미소로 고객을 맞는 직원들을 만납니다. 순간‘하루 종일 저렇게 서서 일하면 다리와 허리가 아프겠다. 또 안면근육도 자주 풀어줘야 할텐데…’라는 오지랖 넓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찾는 매장에 이르게 되고, 전시된 상품들을 둘러봅니다. 내 발길이 닿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직원은 고객의 시선을 놓칠세라, 아주 친절하게도 고객이 찾는 물건과 취향 등을 일일이 묻고 설명도 해줍니다.
“고객님, 이 제품은 ○○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시고요, 이 디자인은 고급스럽게 잘 빠져서 인기가 아주 좋으세요.”“이 제품은 ○○에도 좋으시고요, 가격은 ○○되십니다.”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현상에 갖다 붙이는 무분별한 높임말이 불편함을 넘어 우리말과 글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현실에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측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시정을 요구해봤자 바꿀 권한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더 이상 불편한 말을 듣지 않으려고 매장에 들어서며“구경 좀 할게요, 궁금한 건 여쭤보겠습니다”라고 선수를 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에 과잉친절도 줄어들고 나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쇼핑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오랜만에 패밀리레스토랑에 가게 되었는데, 청년노동자가 테이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객의 눈높이를 넘지 않도록 자세를 낮춘 뒤, 메뉴판 음식에다 높임말을 붙여가며 주문을 받습니다. 또 근무시간에 걸려오는 텔레마케터들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상품에 대한 높임말은 빠지지 않습니다. 어느샌가 그 불편함이 도를 넘어 이제는 작은 매장에까지 상용화되고 있어 심각한 수준입니다. 기업의 전략이라는 것이 고작 그들이 파는‘상품’에까지 존댓말을 붙이고 비록 상식을 넘어서는 고객이라도 맞대응하지 말 것을 직원들에게 강요하며 종의 신분을 취하게 합니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들려오는 갑질 논란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잠잠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적 모멸감에 고통을 호소하는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가지기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고객이 왕이기 이전에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사람이 서로의 존엄과 품위를 지켜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고객에 대한 극존칭이 지나쳐 물건보다도 못한 위치에 노동자가 있는 그릇된 문화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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