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55호 2015.11.22 
글쓴이 이동화 신부 

우리가 원하는 임금, 예수님이 원했던 임금

이동화 타라쿠스 신부 / 신학원장 겸 신학대학 교수

  예수님을“그리스도”라고 믿었던 베드로(마태 16, 17 참조)의 고백대로,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기름부음 받을 임금’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과 다윗을 이어 다시 한 번 더 새롭고도 부강한 이스라엘을 건설할 왕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당시 사람들의 희망 섞인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걸쳐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시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그렇게 흘려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세 번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고를 반박(마르 8, 32 참조)하고, 제자들은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인가에 대해 길가에서 논쟁(마르 9, 34 참조)하며, 심지어는 영광의 날에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마르 10, 37 참조)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실 때, 새로운 왕국의 경제는 풍요로워질 것이며 그 나라는 튼튼하여 개개인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다투던 높은 자리와 그들이 청탁하던 예수님의 옆자리는 바로 이러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희망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 역시‘그리스도 왕’을 그리며 희망하는 바가 그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부유한 삶, 더 높은 자리, 더 건강한 육체에 대한 욕망이 신앙을 대체하기도 하고 또는 신앙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원하는 임금은 그때 그들이 원했던 임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기대와 짧은 생각을 거스르고 우리들에게 도전합니다. 예수님이 원했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세상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원했던,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대하는 풍요와 안락한 삶을 약속하는 임금은 예수님 당신이 원하신 임금의 모습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이 원하신 임금-즉 기름부음 받은 자-은 진리를 증언하고 진리에 헌신하는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그리스도요 왕인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와 욕망을 채워주시는 왕이 아니라, 그것들 너머에 있는 진리의 세계로,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해방과 자유로 우리를 이끄시는 왕이십니다. 그리스도 왕은 우리를 바로 그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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