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72호 2019.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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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문자 데레사 |
주님만 바라보며
박문자 데레사 / 서동성당 시인, 수필가 park2815@hanmail.net
나이가 들어가며 가슴 저리게 느끼는 건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다. 아프면 아파서, 치유되면 치유되어서 가난에서 벗어나 부해지면 부해져서 모든 이유 앞에 오직 주님만 나의 의지이고 감사다.
어느 날인가 새벽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을 가던 길이었다. 별빛이 아직 반짝이는 시간, 나는 새벽미사를 드리러 가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그날도 별빛에 취해 성당을 가는 길이었다. 어슴푸레 앞서가던 할머니가 성당 가는 길이 순례길인 듯 힘들게 걸어가고 계셨다. 한 걸음이 힘들어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한쪽 팔을 부축해드리며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이렇게 힘든데 새벽같이 오시냐 했더니,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을 만나러 가는데 이렇게 힘들게 가면 주님이 더욱 반가워하신답니다.’ 하시며 별빛처럼 웃으셨다.
아, 되돌아보니 나는 무릎을 다쳐 꽤 오랫동안 미사를 드리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집에서 기도를 하며 아픈 것을 핑계 삼았던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요. 이제 아무 바람도 없습니다. 받은 은총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인생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성당에 미사 드리러 가다가 아니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자는 듯 하늘나라 가는 게 소원입니다.”라며 힘든 발걸음을 한 발짝 떼셨다. 충분히 감사하다는 고백이 뭉클하게 여운으로 남아서인지 가슴이 따뜻해졌다. 북쪽 하늘에 떠서 길잡이를 하던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이며 할머니 머리 위에 머무는 것 같았다.
어릴 때는 죽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저 할머니처럼 그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나는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이 할머니 발을 건강하게 해 주셔서 조금만 덜 힘들게 미사를 드리러 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내가 부축하고 있는 이 연약한 육신에 더 버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날은 온전히 나를 비우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만 기도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연약한 자들에게 조금은 더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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