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65호 2019.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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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도아 프란치스카 |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김도아 프란치스카 / 장림성당, 노동사목 행정실장 free6403@daum.net
2001년, 대학신입생 때의 일입니다. 학내에서 청소노동자들이 거리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청소용품까지 자비로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제게 어머니의 모습을 한 노동자들은 함께 부를 노래를 가르쳐달라 청했습니다. 다음날, 악보를 가지고 찾아간 저는 휴게실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임시로 막아 놓은 곳. 냉난방은커녕 제대로 된 벽과 바닥도 아닌 그곳에서 그들은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잠시 누워 쉬고 있었습니다.
총학생회와 함께 학교에 이의를 제기했고, 수많은 방문과 항의에도 반응이 없던 학교의 태도에 급기야 총장실 점거농성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용역회사 대표가 참석한 협상에서 처우개선을 약속받고 총학생회는 이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얼마 후, 학생회관 2층에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만들어졌습니다. 벽과 천장, 에어컨이 있는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맘 편히 옷을 갈아입고, 쉴 수 있는 공간에 매우 기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급여나 근무조건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았으니 그들의 처우가 개선되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어렸던 저는 마냥 기쁘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8월, 한 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가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는 한 평 남짓한 계단 밑 공간에서 휴식 중 사망하였습니다. 대학들을 확인해보니 지하, 계단 밑, 컨테이너 등이 휴식공간으로 배정되었고, 심지어 사용 중인 화장실 한쪽을 막아 휴게실로 쓰는 곳도 있었습니다. 냉난방 시설은 물론이고 창문이나 환풍기가 없는 곳도 많았습니다. 20여 년이 지나도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에 발전이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길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해주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당장 내일부터 거리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의 묵묵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차별의 마음을 갖지 말고, 내가 하지 않는 일을 대신 해주는 노동자를 열린 눈으로 바라봐주세요.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 한 번쯤 귀 기울여 주세요.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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