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56호 2019.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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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태수 클레멘스 |
장미뿌리 묵주
김태수 클레멘스 / 사직성당 · 시인 tsk605@daum.net
20여 년 전 서울서 사업하는 친구가 부산을 다니러 내려왔습니다. 친구는 사업처가 서울이고 나는 부산이지만 우린 꽤 자주 만났습니다. 하는 일이 전자부품 수출이라 일 년 중 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 있는 친구였지요. 우린 언제나처럼 한 번씩 들리던 레스토랑에 갔는데 식사가 나오자 친구는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머쓱하니 그의 기도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는 유아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였으며 몇 해 전에 선종하신 하 안토니오 몬시뇰과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친구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뭔가를 내게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미 뿌리로 만들었다는 묵주였습니다. “이번 이탈리아 출장 중 로마 바티칸에 들러 일부러 너에게 선물하려고 사 왔는데 미안하지만 지금 줄 수가 없다.” 했습니다. ‘젠장 주지 않을 것 같으면 보여주질 말든지 까짓것 대단한 선물도 아닌걸 갖고 별나게 군다 했지요.’ 비신자였기에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내게 교리공부를 마치고 세례를 받게 되는 날, 그때 내려와서 주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 후로도 두세 번쯤 교리공부에 등록했는지 그 친구로부터 재촉 전화를 받은 후에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리를 시작했고 드디어 어느 해 사순절 즈음에 어렵사리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정말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달음에 내려와 주었습니다. 반갑게 손을 맞잡고 축하를 받으며 나는 예의 그 장미뿌리 묵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건네주지 않고 그는 내 손을 붙든 채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본당 마당에 계시던 신부님께 간 그는 축복을 받은 후에야 그 묵주를 내 손에 쥐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잔잔한 흥분은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지금도 묵주를 돌리고 있으면 친구의 체온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내 친구 분도는 몇 해 전 몹쓸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곁에 두고 요긴하게 써야 할 만큼 절실한 사람이라서 일찍 데려갔을 거라고 그의 아내와 세 딸을 위로했지요. 믿기지 않는 친구의 장례미사 내내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천정만 쳐다봤습니다.
내 친구 분도가 주고 간 장미뿌리 묵주는 내 신앙생활의 시작이었고, 아직도 소중한 내 친구처럼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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