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56호 2019.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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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현진 신부 |
열정적인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저는 어릴 때 시골이 좋았습니다. 아궁이에 불 때는 냄새며, 논에 푸른 벼가 자라는 청량함, 밤하늘 평상에 누워 바라본 쏟아질 듯한 별들까지, 사실 그 무엇보다 일찍 돈 벌겠다고 도시로 상경한 막내아들의 손자인 저를 마냥 예뻐해 주신 할아버지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손자가 이뻐 만들어주신 썰매도, 망이 커서 들고 뛰기만 해도 잠자리가 다 들어오던 잠자리채도, 손수 대나무 살을 낫으로 베어 만들어 주신 커다랗고 잘 날던 방패연도 모두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그런 할아버지는 제가 신부 2년차 때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간 시골 작은 방에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벽만 보신 채로 제게 “신부님, 할아버지 하늘나라 가는 길이니까 잘 가라고 기도해 주세요.” 하셨습니다. 그때 할머니의 등을 보며 눈물 한 방울 안 흘려도 사람이 온몸으로 슬퍼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날개 잃은 새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열여섯 동갑으로 결혼하셔서 여든여섯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70년을 부부의 연으로 사신 그분들을 보며 이런 물음이 들었습니다. ‘늘 좋았을까?’ 70년의 시간이 주는 세월의 힘이 할머니의 등 뒤에 얹혀 있었고 그 이듬해 할머니도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타오르길 원하셨던 불꽃이 성령에 의한 결단이든 사랑에 의한 불꽃이든 사실 늘 타오르지 못하는 저를 바라봅니다. 마냥 부끄러운 게으름에도 저를 사랑하시던 할아버지처럼 늘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녀로 부르시는 그분을 믿고 희망합니다. 그래서 찾지 않아야 할 것은 찾지 않고, 주님 안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잃지 않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비추어 주시지 않으시면 짙은 죄의 어둠 속을 뒹구는 어린아이일 뿐임을 잊지 말자 합니다. 오늘 제2독서의 말씀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라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열정적인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어느 식당에서 본 글귀로 저의 강론의 마무리를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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