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9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지난 월요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음은 한결같이 « 빵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제 복음을 보면,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입니다.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입니다. »(요한 6,51)라는 말씀까지도 하신다. 자신의 살덩이를 빵으로 준다니 얼핏 듣기에도 예사로운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한 점 여과도 없이 오늘 복음에 그대로 적나라하게 나온다. «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 (요한 6,52) 내일 복음을 보면, 이런 말까지도 나온다. «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 (요한6,60)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삶을 돌이켜 보면, 빵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나가서 40일간 단식하셨을 때에, 광야에서 당하신 첫 번째 유혹이 빵에 대한 것이었다. 마태오 복음은 그 대목을 이렇게 전한다. « 밤낮 사십 일을 단식하시니 마침내 허기지셨는데 유혹하는 자가 다가와 말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이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 (마태 4,2-3). 악마의 유혹 앞에서 예수께서는 돌이 빵이 되게 하는 기적을 거부하셨다.
그런데, 광야까지 당신을 따라온 몇 천명의 사람들에게는 기적으로 빵을 많게 해서 먹이셨다. 그 전에 유혹을 당하실 때에는 거부했던 것을 왜 이 자리에서는 행하셨을까? 그것은 바로 이 몇 천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자기들끼리도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온당한 방식으로 빵을 받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들은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아예 무시했다. 생존을 위해 자기들이 매일 먹는 빵만 알았지, 참 생명을 살기 위해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내놓으셨던 참 삶의 길을 걸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수께서 차리려고 하신 밥상을 그들은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다. « 당신들이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당신들은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라는 말을 듣고, 그저 기겁을 하고, « 우리가 그러면 식인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냐?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투정 가득한 말만 내뱉을 줄 알았지, 그 말씀은 사람의 아들이 보여주는 참 삶의 모범을 따르라는 말씀임을 그들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릅니다». 이 미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분의 몸을 먹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바로 그분의 몸이 된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수많은 예수의 제자들이 그분의 뒤를 따라서 자신을 세상의 생명을 위한 빵으로 내어 놓았듯이, 우리도 그분의 몸이 되고, 그분의 빵이 되어 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우리 자신을 내어 놓는다는 것이다. 2천년 전 5천명을 배 불리게 먹인 빵이 이제 우리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을 위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어 놓을 때, 우리가 2천년 전 갈릴래아에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재현하는 산 증인이 되는 것이요, 우리가 그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이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가르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