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지난 7월말부터 한달이 넘도록 주일미사 복음으로 요한복음 6장을 연속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6장의 마지막 대목으로서,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는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으로 끝납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요한복음 6장의 내용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이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불리 먹었다고 당신을 따라오는 이들에게 빵과 물고기 너머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그게 뭔가 어리둥절해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자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고 우리가 묵상할 부분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사람들은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실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왔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떠나가 버립니다. 사람들은 빵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은 이성적으로 파악되기 힘들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중들의 반응은 솔직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머리로 아는 것, 우리가 이성으로 파악해서 아는 것은 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라고 합니다. 즉, 사랑은 새로운 앎을 가져다주고, 그렇게 새롭게 알면 새롭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대상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가 머리로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가슴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알고나서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하게 되면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알게 해 줍니다. 알아야 믿게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참으로 믿어야 앎이 열리고 깨우침이 열리게 됩니다. 주님이 누구이신지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알아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믿어야 알 수 있는 분이고 사랑해야 알 수 있는 분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처럼 우리도 주님을 믿고 그분을 사랑함으로써 그분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들은 예수님을 다 떠나갑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이 질문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응답이 오늘 우리 모두의 응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